카테고리 : [정식소설] 라이드 위드 더 데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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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6월 26일
Ride With The Devil - ▶ Chapter 8 - IX. L'Hermite 隱者 (5)




소설을 보시겠어요?




-8-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球根)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주었다.



- T.S. 엘리엇, 『황무지 The Waste Land』, 제 1장 「죽은 자의 매장 The Burial Of The Dead」




아주 먼 옛날… 그 누구도 모를 정도로 까마득한 먼 과거의 어느 날…

저 멀리 홍해(紅海) 바다의 수평선이 한 눈에 보일 정도로 광막하기 그지 없는 열사(熱沙)의 사막…
칼이 모래에 꽂히는 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모래밭에 무릎을 꿇었다.

- 챙!

지친 듯해 보이는 그 남자의 얼굴과 검은 머리결은 끔찍하리만치 붉은 피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그러나 그 피보다 더 붉은 눈동자로 그 남자는 자신 앞에 놓인 사막의 모래밭을 바라보며 차분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 스윽….

그리고 다시 몸을 일으키며 칼에 몸을 기대어 다시금 몇 발자국 더 걸었다.
몇십 발자국을 더 걸었을까… 그는 몸에 쌓인 상처와 고통에 다시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버렸다.

그러는 그가 힘겹게 고개를 들고 바라보는 홍해의 푸른 물결… 그리고 그의 눈 앞에 바다를 바라보며 눈물짓고 있는 검은 생머리의 가뭇한 피부의 미녀가 주저앉아 있었다.

"……."

찢어지고 베어진 옷을 겨우 걸치고 있는 초췌한 모습이었지만, 그 차림으로도 가릴 수 없을 만큼 요염하고 매력적인 모습의 미녀였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곤 아직도 눈물이 맺혀 있는 그 검은 눈동자로 그 남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당신은 어떻게 여기에 오신 건가요?"
"추방당했죠."

그 여인의 질문에 그 남자는 힘겹게 답했다.

"'하늘'에서 쫒겨나 이 '에덴'의 땅으로 추방당한 죄인… 단지 그뿐이에요."
"……."
"당신은 무엇 때문에 왔죠?"

그 남자의 말에 그녀는 슬픈 눈으로 다시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형벌이에요."
"… 형벌이라뇨?"
"네, 저의 원죄… 「음란함」으로 인한 형벌이에요."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보세요. 전 그 죄의 벌을 받고 있었어요…. 저 수많은 이형(異形)의 괴물들과 악령들과 악마들에게 능욕당하고 더럽혀지고 있었어요. 방금 전 당신께서 몰살시킨…."

그들 주위에는 사막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사막에는 온갖 괴기스럽고 요사하고 부정한 괴물들과 악마들의 시체가 가히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찢겨진 시체들… 아니, 차라리 살덩이들이라고 표현해야 맞을 정도로 박살난 육체들이 피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저기 사막의 지평선까지 가득 채운 이 더러운 시체들과 그 시체들로 저주받은 사막의 땅 위에는 모래에 꽂힌…
수백만 개의 검들이 마치 거대한 군사들이 도열한 것같이 서 있었다.

이 모든 괴물들과 악마들을 몰살시킨 주인공인 이 남자는 이제 자기 손에 마저 남은 검을 옆으로 집어 던지며 그녀의 옆에 주저 앉았다.
그가 옆에 앉자 그녀는 말을 하며 점점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저는 음란함으로 인해 신에게 저주받고… 남편에게도 거부당해 이 곳까지 쫓겨 왔어요. …그리고 이젠 이 수많은 괴물들에게 능욕당하며 더럽혀졌어요."

그녀는 흐느낌을 멈추지 않으며 말했다.

"… 이런 부정하고 더러운 절 왜 당신은 구해준 거죠? 대체 왜…?"

그런 슬픔에 잠긴 그녀를 바라보며 그 남자는 조용히 그 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유가 있어서 그리한 것도 아니에요. 그리고 자격이 있어서 그리한 것도 아니구요. …저도 또한 신의 저주를 받은 죄인일 뿐이니까요."
"……."

그의 말에 눈물이 고인 눈으로 그 가뭇한 피부의 미녀는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저도 당신과 같은 「죄인」이니까… 그래서 당신을 구해준 거라고 생각해 주세요."
"… 아."
"그리고 전…"

그렇게 말하며 그 남자는 피로 물든, 그러나 귀엽게 생긴 미모의 얼굴에 미소를 띠으며 그 여인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녀의 검은 머리결을 쓰다듬으며 매만져 주며 말했다.

"… 이처럼 아름다운 당신이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구요."

그녀는 순간 그 손길에 움츠러 들었다.

"……."

하지만 아까 전 그 더러운 괴물들의 손길과는 다른… 「따뜻함」이 느껴지는 손길에 그녀는 서서히 그 남자의 손길에 머리결을 가만히 맡기고 있었다.

그랬다.
지금 그녀에게는 따뜻함이 느껴지는 그 손길이 그 순간 가장 필요했었던 것이었다.

그 남자는 이제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어루만지며 그녀를 응시한다. 그녀도 이제 그 눈물이 맺힌 마음에 두근두근한 감정을 실어 그 남자의 '붉은 눈동자'를 말없이 마주보며 응시했다.
그 남자가 그녀의 그 보석같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름다워요…."
"…아."
"저의 이 '저주받은' 눈으로도 그대는 정말로 아름답게 보여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따뜻하게 미소짓는 남자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 그러다가 순간 그녀는 다시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

순간 슬픔이 복받히는 듯 그녀가 다시 울음을 터뜨리며… 이번에는 그 남자의 품에 안겼다.

"…이제 괜찮아요. 다 괜찮아요."
"흐흑…."

품에 안긴 그녀를 따스히 감싸 안고 살며시 토닥이며 그 남자는 이 미녀를 달래 주고 있었다.
둘 다 저주받은 추방자의 몸… 그들 둘은 자연히 서로를 위로하며 달래고 있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당신의 그 아픔, 그 저주, 그 운명… 주제넘은 일이 아니라면 제가 당신을 그것들에게서 지켜 주고 싶어요."
"…아?"

남자가 다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그녀의 눈동자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그 말에 그녀가 감동한 듯 말을 잇지 못하자, 그 남자는 먼저 용기를 내어 이 가뭇가뭇한 미녀를 바라보며 먼저 용기를 내어 말했다.

"당신을 나의 신부로 맞아들이고 싶어요.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이 아름다운 홍해 바다의 푸른 물결이 보이는 이 사막에서… 이 검은 머리의 남자가 가뭇가뭇한 미녀에게 청혼을 하고 있었다.

"나의 '이름'을 걸고 당신을 나의 아내로서, 나의 '여왕'으로서 지켜 드릴 것을 서약합니다. 왕은 여왕을 지키는 법… 반드시 당신을 운명에게서 제 손으로 지켜드리겠어요."

그런 그의 프로포즈에 그녀는 다시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이 눈물은 아까 전의 눈물과 같지 않은 눈물…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그녀가 말했다.

"… 이런 저에게… 그렇게 따뜻한 말씀을…."

그 말을 잇지 못하고 반라(半裸)의 그녀가 조슈아에게 안겨 입을 맞추었다.
이 가뭇한 미녀의 승낙이나 다름없는 키스를 따뜻하게 안으며 받아주는 검은 머리의 남자… 혀가 얽히는 깊숙하고 뜨거운 키스를 나눈 이 미녀는 이 남자에게 맹세를 하듯 말했다.

"좋아요. 행복해요. 부디 절 당신의 아내로 삼아주세요."
"네. 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마지막 심판의 날이 올 때까지… 나는 당신의 「낭군」이에요."

따뜻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 남자… 이 사랑스런 남편에게 그녀도 미소를 지으며 손으로 그 남자의 가슴을 살포시 밀었다. 그리고 그 남자를 눕히면서 그녀는

"그렇다면 그 결혼의 증거로… 그 맹세로…."

그 어여쁜 살결의 손으로 그녀는 이 남자의 옷을 벗기고 있었다.

"여기서 절 가져주세요. 당신의 '신부'인 저를 당신의 소유로 만들어 주세요, 나의 '두 번째' 남편이시여…."

그녀가 뜨거운 눈길과 숨결로 갈구하는 그 요구의 목소리에 그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에 그녀도 이제 거의 헝겊조각밖에 남지 않은 자기 옷을 마저 벗어내리며 아름다운 나신을 드러내었다.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나의 '낭군님'."
"저야말로…."

그녀의 가뭇한 속살이 드러난 나신의 가슴과 허리, 그리고 잘록한 아름다운 배를 감탄스럽게 바라보는 그 남자…
그 남자가 그 탄탄하고 매끈한 허리를 어루만지다 배를 어루만지며 그녀의 예쁜 모양의 배꼽을 손가락으로 더듬자 그녀는 그의 손길에 쾌감을 느낀 듯 신음을 냈다. 그리고 이제 그의 손이 점차 그녀의 가슴께를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그녀의 음란하고도 또한 아름다움과 매력이 느껴지는 나신(裸身)의 몸을 바라보며 찬탄을 보내는 그 남자에게 자랑스럽다는 듯이 미소지으며 그녀는 나직이 속삭였다.

"당신의 이름을 알려 주세요. 제가 영원히 이 세상의 끝까지 소중하게 간직할 그 이름을…."

그녀의 그 요구에 그 검은 머리의 남자는 몸을 일으켜 이 아름다운 신부의 입술에 키스를 하러 다가가며 속삭였다.


"그렇게 하겠어요, 나의 아름다운 신부이시여…. 나의 이름은…"



-*-



"…드디어 '사슬'을 하나 더 풀어버리신 거군요, 나의 낭군님."

미즈호가 '그것'을 예감한 듯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어느 집의 베란다에서 밤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그녀의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금발의 머리결을 머리 위로 틀어올린 채, 가뭇가뭇한 피부의 아름다운 나신을 시트로 가리고 밤하늘을 바라보는 미즈호…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같이 침대 시트를 히마티온(Himation)처럼 두르고 그녀는 시트를 손으로 잡고 그녀의 봉긋하기 그지 없는 풍만한 가슴을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트는 그녀의 등 뒤에서는 거의 밑으로 내려가 그녀의 부드러운 살결의 등을 드러내며 그 밑의 허리선에서 내려가 엉덩이 윗부분까지 드러나 있었다.

밤 특유의 차가운 공기를 살결로 느끼면서 그녀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혼잣말을 했다.

"낭군님과 제가 그곳, 홍해에서 만났을 때 저도 '그것'을 봤었죠. … 그랬죠. 그건 마치 하늘에서 내리는 '신의 회초리' 같았어요."

그녀는 지금 그 누구보다도 조슈아의 안위만이 걱정이 될 뿐이었다.
조슈아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외에도 에스델, 마리아가 있다는 건 알지만, 분명 조슈아의 '아내'는 바로 미즈호, 자신이었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남편'이자 '낭군님'인 조슈아를 지금 이 순간 떠올리면서, 그녀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래요. 그것은… 수를 헤아릴 수도 없는 무수한 '검들의 심판'이었어요."


-*-



"글라디 인피니툼 Gladi Infinitum (무한의 검)…."

하늘을 바라보며 조슈아가 중얼거리는 그 말과 함께 저 멀리 하늘에서 변화가 생겼다.

미국 동부 뉴욕 480km 상공… 인공위성 저고도 궤도에 해당하는 이 곳에서 전기를 발하며 한 거대한 '영역'이 열리기 시작했다.
조슈아와 맥스, 레오가 무기를 소환하는 그 정체 불명의 아공간(亞空間)인 '스키드블라드니르'를 초대형으로 확대한 듯한 그 영역은 무려 직경이 800m에 달했다.
그리고 그 영역에서는…

- 스으…

그 영역의 검은 '지평면'에서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무수히 많은 검들이 검은 공간을 뚫고 밖으로 솟아 나오기 시작했다.
하나하나가 역사상에 전해지는 명검들이나 다름 없는 '명검들의 잔재(殘滓)들'이 실체화가 되며 이 거대한 아공간(亞空間)에서 솟아 나오는 장면은 가히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그 공간에서 검들이 솟아 나오다가 잠시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와 함께, 지상의 뉴욕에 서 있는 조슈아는 아주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세계의 왕'이며, 또한 '공중의 권세를 잡은 왕 Archon tes exousias tou aeros'이로다."


그 말과 함께 검들은 순간 동시에 멈칫하다가, 일제히 동시에 밑의 지구를 향해 떨어졌다.
마치 밑의 거대한 힘에 이끌리듯 480km 아래의 뉴욕 시가지를 향해 그 수많은 검들이 자유낙하를 하며 점차적으로 가속을 얻기 시작했다. 지구의 중력과 관성… 그리고 그 무지막지한 위치 에너지가 운동 에너지로 바뀌면서 엄청나게 올라가는 검들의 낙하 속도는 무시무시할 정도였다.

하나 하나의 검들이 무려 시속 1만km에 가까운 무서운 속도로 저 천공에서 지상을 향해… '신의 회초리'를 갈기듯 떨어지고 있었다.
하나 하나의 검들은 대기를 가르며 생기는 마찰열에도 녹지 않은 채… 그 엄청난 에너지와 속도로 자신들의 '왕'인 조슈아가 서 있는 뉴욕으로 강림하고 있었다.

마치 별이 빛나듯 수만 개도 넘어 보일 정도로 빽빽하게 불꽃을 발하며 낙하해 오는 수많은 검들이 밤 하늘에 가득차 보였다.
그 가공할 만한 장면에 뉴욕의 시민들과 FEMA 대원들마저 넋을 읽고 그 광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지금 이 순간 자신들의 눈 앞에서, 심판의 날에 하늘이 이 지상의 인간들에게 내리는 '징벌'이 체현된 것 같았다.

"… 신이시여."

그리고 저 멀리서 수십 줄기의 빛들이 뉴욕 시내에 꽂히기 시작했다.

- 쿠쿵!!

마치 지축이 울리는 듯이 멀리서 무서운 충격이 전해져 왔다.
그리고 그와 함께 저 멀리서부터 폭발이 시작되었다.

"…!!!?"

그 거대한 폭발은 마치 파도와 같이 이곳까지 '밀려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거대한 폭음과 함께 조슈아가 서 있는 광장은 파괴의 불꽃에 휩쓸렸다.

끔찍한 비명과 고함마저 순식간에 불어닥친 후폭풍과 폭발 소리에 밀려 홍수에 휩쓸리듯 스러져갔다.


… 하늘에서 바라본 뉴욕의 모습도 그와 다를 바가 없었다.
불꽃과 연기로 가득한 파괴의 현장… 그 불바다는 성경에 나오는 게헤나를 연상시키기 충분할 정도였다.





그때 내가 말하기를 주여 언제까지 옵니까?
주께서 답하시길 도시가 황폐해져 사람이 살지 않고
집에는 사람이 없고 땅이 완전히 황폐해질 때까지이다.


- 구약 성경, 이사야 서(書) 6장 9~11절





-*-


"… E che sospiri la liberta!
… 한숨을 쉽니다 자유를 그리며."




헨델의 아리아 《울게 하소서 Lascia ch'io pianga》의 마지막 가사가 끝나며 에스델의 아름다운 노래가 끝이 났다.
그녀가 노래를 마치고 조심스레 가슴께에 손을 올리며 허리를 숙여 인사하자 마치 극장 전체를 울리는 듯한 커다란 박수와 함성소리가 울렸다.
특등석에 앉아 여전히 심드렁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던 알페르도 예의상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박수를 쳐 주고 있었다.
알타반은 그에 비에서는 더 적극적으로 그녀의 노래에 대해 감탄의 환호도 외쳐 주는 편이었다.

"역시 천상의 가희로군! 멋진데!"
"뭐 그럭저럭이군요."

알타반의 칭찬에 알페르도 대꾸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반응이 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알타반이 타박하듯 말을 건넸다.

"자네는 그닥 감동이라는 것을 잘 안하는군 그래."
"저 '천사'에겐 저 정도야 기본일 거 아닙니까?"

여전히 심드렁한 표정으로 알페르는 말했다.

"아마도 저 '공주님'께서 백마를 탄 자신의 '왕자님'을 찾으며 구해달라고 호소하는 목소리가 더욱 더 감동적일 거 같은데요?"
"쯧쯧, 사람하고는…"

알페르의 그런 '악의적인 말투'에 약간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알타반이 몸을 일으켰다.

"역시 자네는 저 '천사'도 인질로밖에 생각하지 않는군. 우리 사라 양과 더불어 저 '천사'마저 자네의 '새장'에 넣어야 만족할 텐가?"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사실 저는 페리블렙토스, 그 여인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 아시다시피 저는 '그'와 관계된 모든 것에 원한이 있으니까 말이죠."

그 말에 알타반도 순간 뭔가 묘한 우연이라도 발견한 듯 아이러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사라와 에스델, 그리고 그 '페리블렙토스'는 '그'와 관련이 많은 여인들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들은 조슈아와도 관련이 많은 여인들이기도 했다.

단순한 우연인 것인지, 아니면 '그'가 의도했던 일이었던 것인지… 이게 정말 신이라는 작자가 우리를 골리기 위해 만들어 놓은 아이러니한 끈들이란 말인가.
하지만 알타반 자신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 우연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도대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이 늙은 성자는 그의 숲에서 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단 말인가!'

… F.W. 니체가 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Also Sprach Zarathustra』에 나오는 말을 떠올리며 그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렇다면 어디 한 번 가보죠."

알페르도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어차피 지금 제가 먼 옛날부터 해왔던 일들 모두가 극한의 천벌을 받아도 마땅한 일들… 이왕 그렇게 된 바에야 거기서 더 악한 짓을 해봤자 그 천벌의 강도가 더 이상 가혹해질 일은 없겠죠."

그렇게 냉소적으로 말하며 알페르가 알타반을 향해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제게 불벼락 소식이 없는 걸 보니, 그 천벌이란 것이 제게 오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 같군요. 아니면 애초에 그런 것 자체가 거짓말 내지는 사기였거나… N'est-ce-pas? (안 그래요?)"
"Oui. (응.)"

프랑스 어로 되묻는 알페르에게 마찬가지로 프랑스 어로 대답하며 알타반이 대꾸했다.

"덧붙여 말하면, 나라면 후자 쪽을 지지하겠네. 만일 천벌이 자네에게 온다면 그건 하늘에서 오는 게 아니라 우리들을 쫓는 세 폰들에게서 올 거 같으니까."
"그들이요?"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라의 눈길을 무시하며 알페르는 알타반에게 되물었다.
그러나 알타반은 일단 그의 되물음에 대답을 하는 대신, 먼저 문으로 나서며 문 옆에서 대기 중인 남자 둘을 불러 뭔가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지시가 끝난 듯 슬쩍 뒤를 돌아보며 알타반이 다짐하듯 대답을 했다.

"인간이란 말이지. 종종 하늘을 대신하는 힘을 발휘하곤 했다네. 세익스피어가 자신의 희곡에서도 말했었지. 「하늘의 힘으로밖에 해낼 수 없다고 여겨지는 걸 인간이 해내는 수도 있다. Our remedies oft in ourselves do lie, which we ascribe to heaven.」 라고…."

세익스피어의 희곡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다』 의 1막 1장에 나오는 대사를 읊어 보이고선, 이번에는 알타반이 알페르를 향해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 '폰'들이 굳이 '인간의 모습'을 취한 것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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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스 가든 - 이글루 소설가 동맹
by 요아킴 | 2008/06/26 17:41 | [정식소설] 라이드 위드 더 데블 | 트랙백 | 덧글(3) |
2008년 06월 24일
Ride With The Devil - ▶ Chapter 8 - IX. L'Hermite 隱者 (4)




소설을 보시겠어요?






-6-


信曰, 果若人言, 狡兔死, 良狗烹; 高鳥盡, 良弓藏;敵國破, 謀臣亡. 天下已定, 我固當亨!

한신은 말하였다. '역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대로였구나.
『날랜 토끼가 없어지면 사냥개는 삶기게 되고, 높이 나는 새가 없어지면 좋은 활은 필요 없게 되며
적국이 망하게 되면 모신(謀臣)이 죽게 된다』고 하였으니
천하가 평정된 만큼 내가 삶기게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사기(史記)》<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




"자 그럼 어디 당신의 실력을 좀 볼까나요?"

바네사… 아니, 토모에 고젠은 그렇게 말하며 아가사를 향해 씩 웃어보였다.
웃어보이긴 하지만 그녀의 몸에서 이쪽을 향해 풍겨오는 살기… 아가사는 긴장한 듯 굳은 얼굴로 토모에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순간, 토모에의 모습이 흐릿해지며,

"…!!?"

어느새 아가사 수녀의 등 뒤에 토모에가 나타났다.

"느리군요."

그리고 토모에가 손에 든 언월도를 큰 동작으로 휘둘렀다.순간적으로 나타나서 공격을 가한 걸 아가사는 겨우 피하면서 손에 든 채찍을 휘둘렀다. 채찍이 파공음을 내며 날아오는 걸 여유있게 토모에도 피하며 아까전 언월도를 휘두른 동작에서 연결하듯 다시 그 창을 휘둘렀다.
창과 채찍이 공중에서 궤적을 그리며 격돌하고 있었다. 언월도의 칼날과 봉이 연결된 부위에 묶여 있는 기다린 끈이 어지럽게, 그러나 아름답게 흔들리며 아가사의 채찍과 함께 공중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찌르는 창날을 피하면서 채찍을 날리고, 또한 파공성을 발하는 채찍을 피하며 창날이 다가왔다. 그렇게 그녀들이 무섭게 싸우고 있는 주위는 공기 자체가 흔들리며, 무기에서 발하는 바람들이 카마이타치(鎌鼬)같이 칼날이 되어 그녀들 서로에게 날아갔다.

- 찌익!

아가사 수녀의 치마폭이 찢어지며 그 틈으로 검은 색의 가터벨트와 커피빛 망사스타킹이 드러났다.
그리고 다시 날아오는 카마이타치…

- 찌익!

이번에는 토모에의 웃옷의 가슴쪽 부분이 찢어지며, 그 작은 틈으로 그녀의 브레지어와 봉긋한 가슴계곡이 드러났다.

"후우…."

격렬한 공격 중 잠시 휴식을 하려는 듯 그녀들 둘이 싸움을 멈추자,

- 스륵…

토모에의 바지 한 켠의 끈이 떨어지며 바지의 다리 한쪽 부분 전체가 밑으로 흘러내리는 것과 함께 아가사 수녀의 코이프도 벗겨지며 그 안에 숨겨둔 풍성한 머리결이 드러났다.

"제법 하시네요, 자매님."

토모에가 먼저 감탄하듯 한 마디를 던졌다.

"그쪽이야말로."
"저야 뭐, 천년 전부터 싸움에 익숙했었으니까요."

헤이안 시대의 귀장(鬼將)이었던 토모에 고젠과 대등해 보일 정도로 아가사 수녀는 잘 싸우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실력에 토모에는 아까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아가사를 약간은 얕봤던 것을 마음 속으로 수정하고 있었다.

"흐음, 굉장히 인상 깊은 싸움이었습니다. 두분 모두."

그런 그녀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맥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눈을 옆으로 슬찍 돌렸다.
아까 전 싸움으로 인해 밖으로 드러난 아가사 수녀의 가터벨트와 스타킹으로 감싼 매끈한 다리에 하얀 살결의 허벅지, 그리고 토모에의 매끈한 다리와 봉긋한 가슴계곡을 흐뭇하다는 듯이 바라본 맥스는 씩 웃으며 말했다.

"두 아가씨께서 계속 싸우면 조만간 공짜로 두 미녀의 스트립 쇼도 볼 수 있겠는데요."

그 말에 토모에는 망설임 없이 맥스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그리고 맥스를 무시한 채 그녀는 아가사를 향해 고개를 돌려 말했다.

"계속할까요? 이 색마 녀석 눈요기나 실컷 해주게 될 거 같지만."
"글쎄요. 제 임무는 본래 맥스 신부님을 척살하는 것이라서…."

맥스는 그런 아가사의 말에 아까 전까지 싱글싱글거리던 표정을 얼굴에서 지웠다. 그리고 그는 아가사 수녀에게 다가가서는,

"그래서 그런데… 제가, 아니 우리가 지금 아가사 수녀님과 계속 싸우든지 말든지 간에 일단 하나는 짚고 넘어갔으면 합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생각으로는 빌어먹을 바티칸을 통채로 뒤집어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만, 일단 하나는 알고 넘어갔으면 합니다. 대체 그 빌어먹을 성도(聖都)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

그의 그 질문에 아가사는 약간 망설이는 듯해 보였다. 뭔가 말해서는 안 되는 내용이라는 느낌을 풍기는 그 침묵에 맥스는 채근하듯 다시 물었다.

"이 노트르담 성당에도 고해성사소는 있을 테니, 뭐하면 거기 들어가셔서 대답하셔도 되요."
"아뇨, 그렇게까진 하지 않아도 되요."

아가사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오늘자로 바로 명령이 떨어진 거에요. 오늘 오후 교황 성하께서 독살되셨고…."
"…!!!"

순간 움찔하는 맥스의 모습….

"그 범인으로 예레미아 추기경 예하께서 지목되셔서 현재 지금 구금 상태, 그리고 「글라디우스 미카엘루스 Gladius Michaellus (미카엘의 검)은 해체되었습니다."

그녀의 말에 맥스는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이었다.

"성하께서… 독살… 당하셨다고요?"

그답지 않게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비틀거리며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일그러지는 표정을 띠었다.

"요하네스… 넌 결국…."

차마 눈물을 흘리지는 못하는 듯했다. 아니다… 그건 아닌 듯했다.


… 그는 지금 '눈물을 흘릴 수 없어서' 괴로운 듯했다.


"대체 누가… 그런 짓을…."

아직도 믿을 수가 없다는 듯한 슬픈 표정으로 되뇌는 그에게 아가사가 말했다.

"현재는 예레미야 추기경 예하께서 유력한 용의자이십니다만…."
"그러니까 그 분이 왜 그러겠냐고!!!!!!"
"!!?"

맥스가 분노를 담아 크게 외치자 그의 주위로 순간적인 공기의 폭발이 일어나 파동이 주위로 퍼졌다.
노트르담 성당의 가고일 상이 떨어져 나가고 스테인드 글래스 창문이 박살날 정도로 커다란 파동… 그 기세에 바네사와 아가사도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했다.

"그 분이 그런 짓을 할 리도 없고… 더구나 교황 성하께서 그렇게 죽었다니… 어떤 미친 새끼가 그딴 음모와 모함을 꾸몄다는 거…."

그렇게 분노를 짓누르듯 이를 악물며 중얼거리던 맥스는 순간 머리에서 뭔가를 떠올린 듯 멈칫했다.

"……그렇군."

… 잠깐의 생각 후, 맥스는 그제서야 사태가 파악이 된 듯 입가에 씨익 하고 미소를 지었다.

"… 맥스 군?"

바네사, 토모에 고젠은 그 미소를 보며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지난 1천 년간 그를 옆에서 지켜본 경험상, 지금의 이 표정은 맥스가 엄청난 살육을 저지르기 전에 지었던 미소였기 때문이다.

지금 맥스는 이 세상의 모든 분노와 증오와 잔인함을 독기(毒氣)로 품은 괴물만이 지을 수 있는… 그 미소를 지금 입가에 띠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군…."

그리고 이제 맥스는 아가사와 바네사를 향해 고개를 돌려 말했다.

"아무래도 전 여기를 떠나야겠군요. 가야겠어요."
"간다니요? 어디를?"

아가사의 물음에 맥스는 피식 웃으면서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한 표정으로 이 아름다운 글래머 수녀를 바라보았다.

"……."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그녀를 외면한 채 뒤돌아서 발걸음을 옮기는 맥스.
그의 등 뒤로 아가사가 다시 한번 제지하는 듯 말을 던졌다.

"기다려요! 저와 '유다의 사제들'은 신부님을 잡으러 여기에 왔습니다. 그런 고로 저 아가사 수녀는 성도 바티칸으로 도망치려고 하는 불온한 '불경자'인 신부님, 당신을 보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제가 불경자라구요? 달아난다고?"

그녀의 그 말에 별 웃기지도 않은 농담이라는 듯이 피식 웃으며 맥스가 답했다.

"「불경자는 누가 추적하지 않아도 달아난다. Fugit impius nemine persequente.」 … 뭐 그렇다는 소리군요. 하지만 전 지금 달아나는 게 아니랍니다."
"그럼 설마…."

그녀의 말에 맥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연 설명을 했다.

"당신이 설마 하는 바로 그거입니다. 전 지금 예레미아 추기경 님을 구하러 갈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요아킴 추기경에게 전화를 걸어서 카스텔 산탄첼로 성의 수비 병력을 모조리 빼라고 하세요."

그렇게 말하며 맥스는 절대 농담이 아니라는 듯 진지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그러는 편이 좋을 거라고 말해주세요. 그 인원들을 모조리 빼돌려 요아킴 추기경 '예하'의 보호 병력으로 돌린다고 해도, 내일 저녁 해가 뜨기 전에 스칼라 산타(Scala Santa : 성스러운 계단) 위에서 제가 직접 요아킴 예하의 머리통에 총알을 박아넣을 거니까…"
"……!"

저런 엄청난 소리를 아무 거리낌 없이 하는 맥스에게 아가사는 완전히 질린 듯했다.

"그 동안 그 양반이 쓸데 없는 몸부림이라도 치는 게 좋을 거라고 전해주세요. 그럼."

그렇게 말하며 뒤로 몸을 돌리려는 그때, 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 이런… 그러실 거라고 생각했죠."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나타나 맥스를 향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래서 예레미야 추기경 예하께서 맥스 씨에게 이 말을 전해 달라고 하시더군요."

그 목소리는 맥스와 아가사 수녀, 둘 모두가 아는 목소리였다.

"패트릭 신부님?"
"예상대로군요. 파견된 요원들이 모두 전멸… 그래도 아가사 수녀님은 살아있으셔서 다행이군요. 뭐, 맥스 씨의 성향을 보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지만."

패트릭 신부의 등장에 맥스도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분명 그렇게 격발하셔서 바티칸으로 쳐들어 가려고 할 거라고 예레미야 예하께서 예측하셨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이 말을 전해 달라고 하셨죠. 제가 여기로 오기 전, 추기경 예하께서 카스텔 산탄첼로의 독방에 '묵상'하러 들어가시기 전에 말이죠."

감금되었다는 말을 '묵상'이라는 말로 포장을 하고 있는 패트릭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맥스가 물었다.

"무슨 말씀이었지?"
"아마 당신만 이해하실 말인 거 같더군요. '이제 미카엘의 검은 부러져 더 이상 '자네의 검'이 될 수 없네…'"


-*-



카스텔 산탄첼로의 감옥 안에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예레미아 추기경은 기도하며 중얼거렸다.

"그래, 이제 이 글라디우스 미카엘루스(미카엘의 검)는 쓸모없는 먼지일 뿐이라네. 그러니, 맥스 군 자네가 이제 자네 자신의 '검'을 뽑을 때가 왔다고 생각하네."

한숨을 쉬며 예레미아는 손으로 성호(聖號)를 그었다.

"이제 더 이상 교황청도 자네의 편이 아닐세. 자네 편은 이제 유일하게 '달에서 온 아이들' 뿐일 테지. 그러니 자네가 원하는 대로 자네의 검을 뽑고 자네의 길을 나서게. …물론 자네의 검이 '계시록(啓示錄)의 검 Gladius Apocalypsis'이라는 건 알고 있네만, 그걸 어찌 막을 방도가 있겠는가…"

거기까지 말을 하고 예레미야는 잠시 뭔가를 망설이는 듯하더니, 곧 결심을 한 듯 자비와 가호를 바라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만 한 가지 부탁이 있다면 말일세…."


-*-



"… '자네가 인간 가운데에 있을 만큼은 자비로울 수 있었으면 좋겠네….' 뭐 이런 말씀이셨습니다."

예레미아의 말을 담담하게 패트릭이 전해 주자, 맥스는 그 말을 곱씹어 보는 듯 말이 없었다.

"즉, 이렇게 되었다는 소리가 되는군."

맥스는 아주 통렬하게 비아냥거리는 어조를 띠며 말했다.

"이제 바티칸은 나에게 더 이상 쓸모가 없는 '사냥개'가 되었다는 거지. 그래, 독일의 모 수도사가 이런 소리를 했던가… 「지붕에 올라가면 사다리는 치우는 법이다 Er muoz gelichesame die leiter abwerfen, so er an ir ufgestigen 」라고 했던가… 이제 '영혼의 새장'을 추적할 사냥개가 날 물려고 하는 '미친 개'로 변했다면 나에겐 이제 쓸모가 없다는 소리가 되겠지."

그렇게 말하며 맥스는 하늘의 달을 바라보며 말했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말 같이… 이제 나에게 더 이상의 선택의 여지는 없게 되겠군. 바티칸의 손에 내가 죽느냐, 아니면 바티칸이 나의 손에 멸망당하느냐…"



-7-


"E che sospiri E che sospiri la liberta!
한숨을 쉬고 또 쉽니다 자유가 그리워"



조슈아가 슈트를 나풀거리며 앞으로 가며 옆으로 손을 펼치자 그의 손에 쥐고 있는 총 근처로 결계가 「발동」을 시작했다.

- 차르륵….

마치 3차원 홀로그램같이 희미하게 윤곽이 드러난 결계에서 점차 실체화가 되며 '공간'과 총의 탄창 사이로 탄알의 체인(Chain)이 연결되었다. 그리고 그 총 주위로 수없이 도는 히브리 어와 라틴 어 글자들의 어지러운 결계는 총 자체의 분자 단위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타불라 스마라그디나 아자젤 제 3서(Azazel Codex 3) - '무한의 탄창'『코르누코피아 Cornucopia』….

이는 분명 마술로 보이지만 정확히 말하면 마술과 과학의 중간 영역에서 발해지는 결계의 일종… 이 결계는 손목 주위에서 발현되어 손에 쥐고 있는 핸드건 내지는 자동화기의 탄창에 '말 그대로' 무한의 탄알을 공급해 주는 결계인 것이다.

전에 레오가 중얼거린 '스키드블라드니르'라는 표현 그대로, 조슈아의 몸 둘레로 겉으로 보기에는 작은 공간이 존재하고있었다. 하지만 조슈아의 팔 주위와 몸 주위에 있는 그 공간 안은, 그보다 더 '거대한' 공간을 왜곡(歪曲)시켜 「구겨넣은」 거대한 탄약고로 이루어져 있는 채 조슈아의 몸 주위에 둘러져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탄약고' 안에서 공급되는 탄알을, 실체화되는 체인을 통해 핸드건의 탄창의 밑부분으로 바로 연결해서 공급, 총알이 빠지자마자 바로 자동으로 탄알이 채워지는 형식이었다. 분명 어디선가 없는 총알을 인위적으로 '창조'해서 사용하는 것은 아니므로 열역학 제 2법칙에는 위배되지는 않으리라. 게다가 이 결계는 총 자체의 분자 단위에도 영향을 주어서 계속되는 총알의 발사에도 총열 부분의 과열과 형태 변형을 억제하기까지 했다.

쉽게 말하면 중국 홍콩에서 유행했던 느와르 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클리셰인 '분명 총알을 다 쐈음에도 탄창을 절대 갈지 않는 총'이라는 설정을 실제로 구현한 셈이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끊임없이 먹을 양식과 술과 과일들이 흘러나오는 거대한 산양뿔 「코르누코피아」의 이름을 딴 결계를 발동시킨 조슈아는 이제 기둥 뒤에서 나와 계단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바로 계단으로 올라오는 일단의 부대들… 그들을 향해 조슈아가 망설임 없이 총구를 겨누었다.

"Freeze!!! (손들어!)"

그렇게 외치며 부대원들도 조슈아를 향해 일제히 총구를 겨누었다. 그러나 아무리 훈련을 받은 그들이라도 몇 초 정도는 각자 다른 반응속도로 총구를 목표로 돌리기 마련이다. 그래도 고작 몇 초의 차이밖에 안 될 거지만.
하지만 조슈아의 총구는 그런 미세한 차이로 총구를 자신 쪽으로 돌리는 그들 중, 자신에게 먼저 총구를 돌리는 대원들의 머리부터 차례대로 총알을 박아주었다.

- 탕! 탕! 탕!…

전혀 반동도 못 느끼는 듯, 양손에 쌍권총을 든 채 조슈아는 자신에게 먼저 총구를 돌리는 순서대로 사람들을 처치하고서 총을 빙그르르 손가락으로 돌렸다.
그리고 다시 총을 잡고, 손가락으로 자동 연사 모드로 조정을 하고는 그는 데저트 이글 구경에 육박하는 두 권총으로 주위를 피바다로 몰아가고 있었다.

총알이 빗발치듯 날아오기도 전에 조슈아가 먼저 총을 드는 사람부터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으며 쏘아대자, 이 뉴욕 거리를 점거하고 있는 수백의 FEMA 부대 군인들도 속수무책이었다.
설사 총알 몇방을 쐈다고 하지만,

- 탕!!
"… 칫!"

픽 웃으며 머리께에서 피를 흘리는 채 그대로 무한의 총알을 쏟아붇는 이 '괴물'을 어떻게 막는단 말인가…
벌써 백 몇명 정도가 조슈아의 총의 제물이 되어, 피가 이제 계단을 따라 마치 폭포수처럼 흘러내려올 정도였다.

그런 조슈아의 '죽음의 춤'에 대항이라도 하려는 듯, 그들 FEMA도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 두었다.

"…흠."

조슈아가 뭔가 이상한 기분을 느끼며 돌아본 그곳… 계단 밑으로 펼쳐진 도로 위로 M1A2 에이브람스 전차 3대가 조슈아가 있는 쪽을 향해 M256 120mm 활강포를 겨누고 있었다.

- 쾅!!!

전차 3대가 동시에 반동으로 들썩이며 주포에서 포탄을 발사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뉴욕 시가지에서 이런 경우같이 수 대의 전차가 목표물을 향해 포탄을 발사하는 그 모습은 아마 내란이 벌어지거나 소련군이 뉴욕을 함락할 경우가 아니면 절대 볼 수가 없을 정도로 진귀한 장면이리라.

하지만 조슈아는 자신에게 기괴한 소음과 함께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포탄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오른손을 들어 펼쳐보였다.

- ……!!!

그리고 그 손바닥을 접고 두 손가락을 펼쳐 앞으로 향하자, 그의 주위로 환영같이 공간 속에서 떠서 희미하게 윤곽이 비쳤다가 이 현실의 공간에서 날카로운 형상으로 실체화되는 '수백의 검'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수백의 검들이 포탄을 향해 날아가며 칼의 벽을 형성하자 포탄 3발이 칼날에 갈기갈기 분쇄되며 폭발했다.

- 쾅!!

포탄들의 조각들이 폭발하며 매캐한 연기가 커다랗게 구름을 지으며, 계단을 덮치듯 덮어버렸다.
광장에 서 있는 군인인들이나 전차 안의 기관병들도 이후의 상황을 모르는 가운데,

"타불라 스마라그디나, 코덱스 인코그니타 (Codex Incognita : 미지의 서)…."

그 연기 속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어두운 검은 연기 사이에서도 형형히 빛나는, 흉안(凶眼)의 붉은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며 조슈아가 말을 이었다.

"「일곱 우뢰가 발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뢰가 발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 (요한 계시록 10:4)

그렇게 요한 계시록의 구절을 인용해서 말하는 조슈아… 연기가 걷히며 드러나는 그의 모습 주위로 이젠 '몇백'이 넘어 보이는 검들의 환영이 조슈아를 '호위'하고 있었다.

마치 그를 중심으로 왕을 호위하는 듯이 공중에 뜬 채 늘어서 있는 수많은 검들… 그 검들 사이에서 조슈아는 하늘로 시선을 돌리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글라디 인피티툼 Gladi Infinitum』…."



-*-



"…!!"

사라가 뭔가 '먼 곳에서' 일어난 일에 놀란 듯 몸을 움찔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지 알타반과 알페르도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알타반이 사라의 그 변하는 표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빛의 귀부인'께서도 눈치를 채신 것 같군."
"네, 확실히 뭔가가 일어나긴 했군요."

무대 위의 에스델도 순간 그들과 같은 것을 느낀 듯 움찔했지만,

"……!"

공연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는지 차분하게 다시 노래를 불렀다.



"Lascia ch'io pianga la dura sorte
울게 하소서 잔인한 제 운명에"




하지만 에스델의 눈빛이 떨리는 걸 놓치지 않은 알페르가 능글맞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 천사 아가씨도 알아챈 것 같군요. 우리의 폰들이 두 번째 「글레이프니르 Gleipnir」를 끊어내버린 걸 말이죠."
"잘 된 일 아닌가? 자네가 바라던 일일 터."
"물론이죠."

알페르는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들이라면 제가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 줄 겁니다.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리겠는데요."
"과연 생각대로 잘 될려나 모르겠군."

자신만만해 하는 알페르에게 알타반이 주의를 주려는 듯이 말했다.

"이렇게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 과연 '그'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모르겠군. 이미 대속(代贖)을 했는데도 또 그 '헛된 짓'을 또 하러 오진 않을 거 같네만."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럴 거 같다고 보네. 알페르 군."

알타반은 밑에서 노래를 부르는 에스델을 바라보며 냉소와 연민이 복합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아, 두 번 다시, 두 번 다시, 두 번 다시, 두 번 다시, 두 번 다시. (He shall come no come; Never, Never, Never, Never, Never.)" (*1)

그런 알타반과 같은 대상으로 시선을 돌리며 알페르는 자신 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라면 이렇게 말할 테니까요… 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삶이여, 다시!" (*2)







오랫만의 주석(....)
by 요아킴 | 2008/06/24 12:29 | [정식소설] 라이드 위드 더 데블 | 트랙백 | 덧글(1) |
2008년 06월 20일
Ride With The Devil - ▶ Chapter 8 - IX. L'Hermite 隱者 (3)



소설을 보시겠어요?




-4-


Had I the heaven's embroidered cloths
Enwrought with golden and silver light
The blue and the dim and the dark cloths
Of night and light and the half-light,
I would spread the cloths under your feet:

But I, being poor, have only my dreams;
I have spread my dreams under your feet;
Tread softly because you tread on my dreams.

내게 금빛과 은빛으로 짠 하늘의 천이 있다면,
어둠과 빛과 어스름으로 수놓은 파랗고 희뿌옇고 검은 천이 있다면,
그 천을 그대 발 밑에 깔아드리리.

하지만, 나는 가난하여 가진 것이 꿈뿐이라
내 꿈을 그대 발 밑에 깔았습니다.
사뿐히 밟으소서, 그대가 밟는 것는 내 꿈이오니.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William Butler Yeats, 『하늘의 천 He Wishes for the Cloths of Heaven』



- 같은 시각,
이탈리아 밀라노, 스칼라 극장(Teatro alla scala)



"에스델 양~, 준비는 다 됐나요?"
"…!"

문 밖에서 나무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에 에스델이 정신을 차렸다.

"아, 네… 지금, 거의 다 됐어요."
"5분 후에 스탠바이에요, 에스델 양."

그렇게 친절하게 알려주는 말에 에스델은 아까 전의 멍한 자세에서 정신을 차리고 오늘 공연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런 그녀를 더 이상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이 바깥의 공연 스탭은 이 말을 남기고 문에서 떠났다.

"오늘 사람들도 많아요. 귀한 손님들도 많이 오셨구요. 그럼, 좋은 공연 기대할께요."

그렇게 응원의 말을 건네고 스탭이 떠나는 소리를 들으며, 에스델은 자신의 앞에 놓인 거울을 바라보았다.

"…."

검은 생머리 결에 아름다운 얼굴과 보랏빛 눈동자… 그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감싸고 있는 아름다운 슬리브리스 드레스…

오늘 이 스칼라 극장의 오페라 독창 공연의 프리마 돈나(Prima Donna)인 에스델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굳은 표정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가슴 속에 돌덩이 같이 가라 앉아 있는 생각… 침울과 불안의 중간쯤에 위치한 듯한 마음 속의 예감…
에스델은 그 생각에 마음 속으로 애타게 한 마디 말을 되뇌고 있었다.

'… 무사하시겠죠? 하지만… 그래도 걱정되요, 조슈아 씨… 내 사랑….'


-*-



"어떨 것 같아요, 그 에스델이라는 아가씨?"
"글쎄. 뭐 그 '세계의 왕'이 사랑하고, 또한 그 자신도 세계의 왕을 사랑하고 있는 절세 가인(una bella cosa a vedere)이라고 들었네만."
"그거 좀 부러운데요."

알타반의 답변에 알페르는 씩 웃으면서 대꾸했다.

"우리들의 '페리블렙토스(Peribleptos)'의 사랑을 받는 것도 모자라서 '복음의 사자(使者)'의 사랑까지 받는다니. 하하."

그 '페리블렙토스'라는 말에 그때까지 알페르 옆에 조용히 앉아 있던 사라가 반응하듯 고개를 돌려 알페르를 바라보았다.

"…!"
"대단한 친구이긴 하지. 우리의 사라 양도 움찔하는 반응을 보일 정도니까."

사라의 반응을 보며 재미있다는 듯이 미소를 짓고,

"뭐 그럼…"

알타반은 특등석에 설치된 난간에 걸터 앉아 있는 채, 알페르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우리 한번 그 '세계의 왕'의 애인이라는 아가씨, 노래 솜씨나 한 번 들어보는 게 어떻겠나, 알페르?"
"우리가 그렇게 한가했었나요…. 하지만 뭐, 그것도 괜찮겠죠. 어디… 천상의 가희(歌姬)의 노래라…."

비아냥 거리면서도 결국 동의를 표하는 알페르의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들이 앉아 있던 극장 특등석 밑의 좌석들에서 커다란 박수 소리가 울렸다. 그에 알페르 일행들도 무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나왔군요. 저 아가씨가 그 '신의 가희', 우리들의 귀여운 '종달새'란 말이죠?"

그 박수소리를 받으며 무대 위로 올라오는 아름다운 흑발의 가희 에스델을, 알페르가 턱을 손으로 괴며 관찰하듯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래요. 그럼 오늘 저 귀여운 '신의 작은 종달새' 아가씨에게서… 음, 그래요. 우리에게 대적하는 그 불쌍한 세 폰(Pawn)의 '수난곡 受難曲 (Passion)'의 제 1막 1장을 듣는 셈이 되겠군요."

그렇게 무대에 올라온 에스델은 가슴께에 손을 올리며 청중들을 향해 허리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다시 울리는 박수 소리를 들으며,

"…."

그녀는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들었는지 특등석 쪽을 올려다보았다.

"호오."

이 아름다운 아가씨와 눈빛이 마주치자, 알타반은 호의를 보이려는 듯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면서 경의를 표하는 손짓을 했다.
물론 알타반이 어떤 사람인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왠지 모를 예감을 느낀 에스델은 그런 알타반의 인사를 정중히 외면하면서, 여전히 마음에 품고 있는 불안을 애써 감추며 조용히 무대 가운데에 섰다.

그리고 공연이 시작되며, 무대와 관객석 모두가 불이 꺼졌다.
이제 무대 위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쳐주고 있는 곳에 서 있는 곳에서 에스델이 조용히 눈을 감고 서 있었다.

마치 하늘에서 강림이라도 한 듯한 아름다운 천사의 모습이었다.

마치 후광과도 같은 빛을 받으면서 무대 밑에서 들려오는 조용히 음악 소리에 박자를 맞추는 이 아름다운 흑발의 천사는…
이제 서서히 눈을 뜨면서 그 예쁜 입술을 벌려 노래를 시작했다.


"Lascia ch'io pianga la dura sorte…
울게 하소서. 잔인한 제 운명에…"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 Rinaldo』의 2막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인 《울게 하소서 Lascia ch'io pianga》를 부르기 시작했다.


-*-



- 같은 시각,
프랑스 낭트의 대성당



"나에겐 한때 꿈이 있었어, 조슈아."

성당 제단 앞에 홀로 코이프(Coif)를 쓰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마치 순결한 수녀같은 그 모습의 연아는 처연한 표정으로 십자가를 바라보며 기도하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아이… 아니, '그 분'이 떠난 뒤로 모든 이들이 죄를 사함을 받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어. 그래,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어. 난 그 꿈을 믿으니까…."

그 기도하는 수녀 복장의 연아의 모습은 주위에서 보면 이젠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스럽기까지 했다.
평소 조슈아의 앞에서 애교를 부리던 장난기 많은 누님의 모습이 아니라, 이것이 그녀의 본 모습이기라도 한 듯 연아의 그 기도하는 모습은 마치 자연스럽고…

원래 '당연히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성(聖)스러움 그 자체였다.

"그 분도 그렇고, 너에게도 그렇고… 그때 난 해줄 게 없었어…. 단지 슬픔과 위로의 눈물밖에는 없었어. 하지만 조슈아 군… 대신 난 너에게 내 꿈을 줄게."

그리고 성호를 긋는 연아는 약간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랬다. 그 전에 조슈아와 같이 성 베드로 성당에 갔었을 때, 그녀가 바라보고 있었던 미켈란젤로의 조각 「피에타(Pieta)」의 그 표정…
그 표정이 연상될 만큼 아주 아름답고도 슬픈 표정으로 연아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

"자, 내 사랑 조슈아 군. 나의 꿈을 디디고 앞으로 나아가 주렴. 네가 밟는 그게 바로 내 꿈이니까… 네가 바로 나의 꿈을 이루어 줄테니까…"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를 하며 그녀는 말했다.

"그러니 조슈아 군, …부디 인간 가운데 있는 만큼은 자비로울 수 있길 바래, 내 사랑."


-*-



- 같은 시각,
미국 뉴욕시 동부 46번가.



"뭐 좋습니다. '세계의 왕'께서 그렇게 선전 포고를 하신 이상, 저희는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해드려야죠."

그 남자가 씩 웃으며 그렇게 말한다.

"알레아 젝타 에스트, 렉스 문두스.(Alea jacta est, Rex Mundus :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세계의 왕이여.)"

그와 함께 조슈아도 말했다.

"그래, 주사위는 던져졌어. 그런데…."

조슈아는 그렇게 말하며 손에 든 환도를 빙글 돌려 칼을 거꾸로 잡으며 말했다.

"방금 자네가 그 말을 내게 했다는 것은 ,즉 자네의 전령으로서의 임무도 끝났다는 소리라고 보는데."

조슈아의 말이 무슨 뜻이 잠시 의아해하는 그 남자의 표정…

"…!!!"

하지만 그 표정은 곧 놀람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표정이 미쳐 바뀌기도 전에 그 남자는 자신의 머리가 목에서 떨어져 나가는 걸 느꼈다.

"툭!"

미처 자신이 죽었다는 것도 느끼지 못한 채, 조슈아가 순간적으로 휘두른 검에 그 남자의 목이 바닥에 떨어져 널브러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조슈아가 서 있는 자리로 집중 포화가 날아들었다.

매캐한 연기가 굉음을 울리는 계단 위에서 피어올랐다.
그러나, 그 연기가 걷히고 나서 그 군인들이 바라본 그 자리에는 어느 새 조슈아의 모습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 그런 거군."

정작 그는 몸을 피해 건물의 한쪽 기둥 뒤에 서서 한탄하는 듯이 중얼거렸다.
마치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저질렀다는 듯이.

"이로서 나의 학살이 시작되었어."

그렇게 말하며 조슈아가 손에 들고 있는 환도를 뭔가 환멸하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아스는 그런 그가 걱정이 됬는지 말을 건넸다.

"… 주인님?"
"…."

조슈아는 그녀의 물음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지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래, 또 다시 난 학살을 해야만 해. 그런데 정말, 나에겐 이 길밖에 없는 걸까?"
"……."
"결국 나는 자유를 박탈당한 채 이 운명을 따라야 할까?"
"주인님…."

조슈아는 회한이 담긴 말투로 한숨을 지으며 말했다.

"결국 나의 숙명은… 버려진 길잃은 한 마리 양이 있더라도 그를 위해 피로 물든 바다를 건너야 하는 걸까…."



"E che sospiri la liberta!
한숨을 쉽니다 자유를 그리며

E che sospiri E che sospiri la liberta!
한숨을 쉬고 또 쉽니다 자유가 그리워"




"아직도 망설이고 계시는 겁니까, 나의 주인님."
"아스…"
"아십니까, 주인님? 이 세상이 있기 전부터 주인님은 사자(獅子)로 태어나셨습니다. 애초에 그런 숙명이셨죠. 그런데 지금의 주인님은 땅바닥에 기어다니는 풀벌레들을 밟지 않으려 조심하시는 사자이신 것 같습니다. 백수의 왕답게 사냥을 하시기는 커녕."
"…."
"주인님, 주인님은 들판을 거닐 때 살아있는 생물들을 밟지 않는다고 하는 중국 전설에 나오는 신수 기린(麒麟)이 아니십니다. 이건 피할 수 없는 사자의 숙명이니까요."
"… 그런 건가."

그녀의 말에 이제까지의 자신의 행동을 곱씹어보는 듯하던 조슈아는 문득 양손을 들어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

조슈아의 눈에는, 지금 바라보고 있는 그 두 손이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게 피칠갑이 된 듯이 보였다.
마치 이제까지 자신이 수없이 죽인 그 수억의 사람들의 피가, 그리고 '그 전에' 자기 자신이 일으킨 거대한 '대전쟁'으로 희생된 이들의 피가 묻어있는 듯한 그 환영(幻影)의 손…

그렇다.
어차피 이렇게 죄로 물들어 있는 자신이다.
이제 자신은 이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피를 찾는 괴물이 된' 사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조슈아는 이제 '피로 물든 손'을 다시 밑으로 내렸다.

어차피 수많은 피로 물들여진 '죄악의 흔적'일진데, 그 위에 피로 물든 물감으로 덧칠을 한들 뭐가 더 달라지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늘어뜨린 양팔에서 손을 펼쳐 '공간'을 열었다.

"…'나의 왕국에 온 걸 환영한다 Welcome to My Kingdom', 제군들."

그리고 그 곳에서 조슈아는 대형 권총 『루퍼스』와 『레온하트』를 꺼내서는, 그 총의 총신을 이마에 대어 차가운 감촉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그런 고로 나의 왕국인 '여기'… 여기에 들어서는 그대들, 모든 희망을 버려라.(Lasciate ogni speranza, voi ch'entrate)."

그렇게 단테의 신곡(新曲)에 나오는 대사를 읊으며 조슈아가 손을 내리자 그가 총을 든 두 손에서 중세의 마법진 같은 결계가 그의 손목을 감싸며 원반 모양으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복잡한 문양과 카발라 식의 마방진, 그리고 성좌도가 3차원으로 펼쳐지는 손목의 결계… 그것을 바라보며 조슈아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타불라 스마라그디나, 아자젤 제 3서(Azazel Codex 3)… '무한의 탄창',『코르누코피아 Cornucopia』…."


-*-



"Lascia ch'io pianga la dura sorte
울게 하소서 잔인한 제 운명에

E che sospiri la liberta!
한숨을 쉽니다 자유를 그리며"



에스델의 노래에 감동한 듯한 청중들과는 달리 특등석의 알타반은 에스델의 노래하는 모습을 뭔가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뭔가 신비로운 「인형」을 보는 듯한 그의 시선… 알타반은 마치 에스델을 연구 대상이라도 되는 듯이 내려다보면서 말을 꺼냈다.

"정말「알레미나」로군 그래."
"네?"

갑자기 엉뚱한 말을 내뱉은 알타반을 바라보며 알페르가 되묻자 알타반이 다시 말했다.

"알레미나라고 했네. 자네는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의 스토리를 모르는가 보군 그래."
"아, 뭐 그렇죠."
"저 오페라가 유행하고 있을 동안에 신대륙에라도 다녀왔나 보군 그래?"

놀리려는 듯이 알타반이 타박을 주자 알페르도 지지 않겠다는 듯이 변명했다.

"그 당시엔 그저 귀족층들 사이에서나 유행하던 통속극 수준의 오락거리에 불과했잖습니까? 제가 굳이 신경써야 할 이유가 그때 당시엔 없었죠."
"하긴 내용이 좀 상투적이긴 하지."

알타반이 동감한다는 듯이 씩 웃었다.

"오페라 리날도의 제 2막에서 알레미나가 부르는 노래가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노래야."

아무리 그래도 기본적인 설명은 필요하다고 느꼈는지 알타반이 알페르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오페라의 내용을 보면, 십자군의 영웅 리날도를 납치하기 위해 사라센의 왕 아르간테와 그의 연인인 마녀 아르미다가 리날도의 약혼녀 알레미나를 납치한다네. 그리고 마녀 아르미다의 마술 궁전에서 사라센의 왕 아르간테가 알레미나에게 환심을 사려고 접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말이지. 그때 그의 접근을 거부하면서 알레미나가 부르는 노래가 바로 저 노래야."
"흐음."
"뭐, 지금은 사라센의 왕과 마녀가 아니라 우리 둘, 즉 '세계의 교황'과 '마기(MAGI)'라는 게 다를 뿐이지. 뭐, 지금 저 아름다운 절세 가희 아가씨의 처지가 알레미나와 다를 바가 없지 않나."

알타반의 의견에 알페르는 가타부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만 멀리서 에스델의 드레스 밑으로 감추어진 봉긋한 글래머의 가슴 계곡을 내려다 보다 있다가, 갑자기 뭔가 재미있는 생각을 한듯 씩 웃으며 대꾸했다.

"그럼 이제 제가 저 글래머스러운 가슴의 '천사 아가씨'의 환심을 사려고 하면 오페라 스토리에 완벽하게 부합되겠군요."
"호오. 맘에 들기라도 했나? 정말 그러려고 그러나?"

알타반이 의외라는 듯이 물어보자,

"아뇨. 설마요. 농담입니다, 농담. 하하."

그의 물음에 알페르가 피식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제가 원하는 건 저 아름다운 천사 아가씨의 '마음'도 아니고 '육체'도 아닙니다. 제가 원하는 건 단지…."

그렇게 말하며 알페르는 뭔가 모르게 이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저 아가씨의 '인질'로써의 '유용함'입니다. 단지 그것만이 지금 저에게 가치가 있죠."



"…Lascia ch'io pianga
Lascia ch'io pianga la dura sorte
울게 하소서
울게 하소서 잔인한 제 운명에

E che sospiri la liberta!
한숨을 쉽니다 자유를 그리며"





-5-



- 같은 시각,
영국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Piccadilly Circus) 광장에서 운행하고 있던 전차들… 전차의 팬더그래프들에 전기를 공급해 주고 있는 어지러운 전선줄 위로 뭔가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해 보였다.

- …!!!

그리고 그 순간 그 밑으로 반경 10미터에 이르는 범위로 커다란 충격파가 몰아쳤다.
굉음과 함께 그 공간 전체가 일그러지며 폭발하듯 주위로 파공성이 터지는 것과 함께, 그 충격에 지나가던 전차가 차선을 이탈해 옆으로 넘어지고 자동차 몇 대 정도도 차도에서 옆으로 공중제비를 돌며 날아가 엎어져 박살이 났다.
그런 난리를 치며 여기까지 '점프'를 한 루 라바다, 란돌프는,

"이런 제길!"

그의 귀 바로 옆을 스치는 총알에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설마 여기까지 총알이 날아올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다.
물경 수백 미터를 넘는 거리에서 총알이 날아오고 있다. 원래 저격용 총으로 저격을 하려고 하면 생각보다 많은 사전 준비가 필요한 법이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설사 수십 시간 전부터 기다리고 있는다는 등의 행동은 할 수 없겠지만 최소한 상대방과의 거리를 알기 위해서는 스코프를 바라보면서 스코프 눈금자에 나오는 목표물의 크기와 삼각함수를 동원해서 거리를 알아내야 한다.
그러니까 상대방의 키를 대략 160cm라고 가정을 하고 상대방의 크기가 스코프 눈금자에서 22칸을 차지한다고 하면, 한 칸당 0.05도에 해당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위치한 거리는 1.6m / tan(0.05 X 22), 즉 830미터라는 식으로 계산을 처리하게 된다.

거기에 맞춰서 자신이 쓰는 총알의 탄속을 감안해 총알이 목표물에 맞는 시간을 계산하고, 풍향에 따라 오차가 날 범위를 가정해 클럭을 조정해줘야 한다. 게다가 습도까지 고려해야 하는데 거기에 고도와 기압과 온도까지 감안해서 공기 조밀도를 계산해야 하며, 그 조밀도에 의해 총알이 날아가는 시간이 얼마나 지체되고, 그 시간 동안 '중력 가속도'에 의해 고도가 얼마나 떨어지느냐도 계산해서 그에 맞춰서 총구를 위로 올려야 한다.

그런데 란돌프가 경악해하는 것은 레오폴트 대위가 그런 '계산 과정' 따위는 애초에 '수행하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스코프 따위도 보지 않고 저렇게 정교한 저격을 하고 있었다. 제 2차 세계 대전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애초에 그런 계산을 '머리 속으로' 해치워 버리고 저격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한손으로.
더군다나 가장 큰 의문점이 있었다. … 란돌프 자신은 '고속 이동'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날 쫓아서 총알이 온단 말이지."

질리기까지 할 정도로 오싹했다. 비록 자신이 존경하는 '지그프리드'가 그닥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이런 '괴물'이라는 것을 몸으로 느끼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저 레오 대위가 들고 있는 총은 엠블라의 '마검 티르빙'도 아니고, 단순한 저격총이지 않은가…

그런데도 그걸로 레오는 란돌프를 무자비하게 '사냥'하고 있는 것이었다.



"도망치려면 도망쳐, 루 라바다."

건물 옥상으로 레오가 '날아와서 착지하며' 중얼거렸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한 듯 옥상 난간에 발을 디딘 레오는 여유있는 표정으로 런던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영 제국의 수도답지 않게 그닥 마천루나 불야성같이 시끌벅쩍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수많은 시민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는 런던의 어둠이 깔린 전경… 그것을 내려다 보는 레오는,

- 철컥!

마치 란돌프가 눈에 보이기라도 하는 듯 손에 들고 있는 PSG-1를 어둠 속을 향해 겨누었다.

"이 '석궁'으로 맞춰 주겠다. 사과가 아니라 네 머리를."

그리고 다시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기며 말했다.

"탤리 호. 탤리 호! (Tally Ho, Tally Ho!)"



이제 하이드 파크(Hyde Park)까지 '점프'를 해온 란돌프의 귓가로 다시 레오의 총알이 스쳤다. 그가 이렇게 '점프'를 할 때마다 절묘하게 란돌프를 향해 총알이 날아오고 있었다.
…그것도 란돌프가 '총알을 안 맞도록 일부러' 절묘하게 쏘는 것이었다.

"그렇군요."

란돌프는 이제야 레오의 의도를 알겠다는 듯이 중얼거리며 나무 뒤로 모습을 숨겼다.

"대위님이 날 몰아 넣고 다니시군요."

진짜 '사냥'인 것이다.
사냥감을 총알로 맞추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몰아넣는 사냥꾼같이 레오가 총을 쏘고 있다는 것을 란돌프는 알아챘다. 물론 그렇다고 자신이 레오가 원하는 대로 총알을 피해 헐레벌떡 쫓겨 다녀야 할 의무는 없는 법이다.
뭔가를 결심한 듯, 란돌프는 안대로 가려지지 않은 나머지 눈동자에 살기를 띠며 다짐했다.

"그렇다면 직접 상대를 해드리죠."

입술을 깨물며 란돌프가 중얼거리고는 다시 '점프'를 감행했다.



"이제야 알아챘나 보군."

란돌프의 결심을 안 듯, 레오도 그제서야 총을 거두고는 앞으로 망설임 없이 발을 디뎠다.
분명 건물의 옥상에서 그는 전혀 망설이지 않고 허공을 향해 발을 디뎌 떨어졌다. 자유 낙하라도 하듯 허공에서 몸을 던지며 레오는 중얼거렸다.

"8개의 다리로 나를 허공으로 태워다오, 척안을 가진 현자의 신마(神馬) 「슬레이프니르 Sleipnir」여…."

그 말과 함께 레오가 공중에서 추락하는 모습이 마치 영상이 흐려지듯 밑으로 끌려가면서 아예 모습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



"왔군."

런던 템즈 강에 놓인 다리들 중 가장 유명한 명소로 꼽히는 곳, 타워 브리지(Tower Bridge).
이 다리를 떠받히는 기둥인 2개의 고풍스럽 탑 중 오른쪽 탑 꼭대기에 각각 란돌프와 레오의 모습이 나타났다.

"칫!"
- 철컥!

아까 전 도서관에서부터 시작된 그들의 싸움 중에서 가장 가까이 근접한 그들 둘이었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레오에게 다트를 날리려는 란돌프의 행동에 레오도 동시에 손에 든 PSG-1을 그의 머리 쪽에 겨누어 란돌프를 제지했다.
한참 동안의 대치… 그 침묵을 깨려는 듯 란돌프 쪽에서 먼저 말을 꺼냈다.

"후우… 도지히 피하기만 해선 안되겠더군요."
"그렇다고 직접 붙으러 온들 뾰족한 수가 없을텐데, 란돌프."

레오의 빈정거리는 듯한 대꾸에 란돌프는 씩 웃으며 말했다.

"아뇨, 나름대로 생각해 둔 것도 있으니 그닥 답답한 건 없습니다."
"그래?"
"궁금하시면 직접 저와 붙어보시는 것도 좋겠죠."
"소원대로 해봐."

그와 동시에 란돌프가 망설임 없이 다트를 레오에게 집어던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레오가 피하며 발사한 총알은 총구에서 나가는 동시에 자신의 탄도 앞에서 날아가는 다트를 옆에서 가격해 박살냈다.
그리고 란돌프는 다시 '점프'를 감행해 뒤로 움직이라는 포즈를 취하고는, 거의 동시에 타워 브리지의 왼쪽 탑 꼭대기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리고 그는 갑자기 탑 꼭대기에 발을 굴렀다.

- 쾅!!

그 충격에 탑 꼭대기의 지붕이 밑으로 한 단계 무너지며 그 충격으로 지붕을 덮고 있던 수백 개의 돌들의 파편이 공중으로 튀어올랐다. 그 파편들을 향해 란돌프는 순간 오른 손을 펴서 손바닥에 새겨진 「호루스의 눈」문신을 보인다.

"「다스 한트 데어 헤카톤케이레스 Das Hand der Hekatoncheires」 (헤카톤케일의 손) "

그 말과 함께 호루스의 눈 문신이 빛났다. 그리고 동시에 수백의 손의 환영이 란돌프의 등 뒤에서 나오며 그의 옆을 스치며 날아가 파편들을 적중시켰다.
그에 그 파편들과 손의 환영들은 수백의 빛의 궤적을 그리며,

- 콰광!!!

탑 꼭대기에 서 있던 레오를 향해 날아들며 폭발했다.
마치 폭격기로 폭격이라도 한 듯 커다란 연기와 함께 탑 위 전체가 연기로 덮혔지만…

- 탕!!

연기 사이로 총구의 불꽃이 보이는 것과 함께 란돌프가 서 있던 자리로 총알이 날아와 박혔다.
하지만, 이미 란돌프의 모습은 거기에 없었다. 그리고…

"역시 빛의 팔을 가진 「루 라바다」로군."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레오 대위님. 그리고 이제…."

연기가 걷히자, 주위가 박살이 나 있는 아래 레오의 목 뒤로 바로 다트를 겨누고 있는 란돌프의 모습이 비쳤다.
이제까지의 수세에서 공세로 성공적인 역전을 했다는 듯 득의양양한 미소로 란돌프가 말했다.

"체크메이트입니다."

하지만 레오는 그닥 지금 상황이 긴장이 안되는 듯이, 뭔가 귀찮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체크메이트? 미안하지만 난 킹(King)이 아니라 폰(Pawn)이라서…."
"폰이라구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란돌프가 되물었다.

"드래곤 슬레이어인 대위님이 폰이라니요? 대위님은 킹이 아니라 엠퍼러라도 무방할…"
"아니, 폰인 게 맞아. 정확히 말하면, 울티마 툴레 Ultima Thule (세계의 끝)까지 가 본 폰이지."

레오는 마치 란돌프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한 어투로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체스 판에서도 제일 끝줄까지 가본 폰 같이… 나는 어디라도 갈 수가 있는 폰이 되었다."

그리고 레오는 이제까지의 홀가분한 짐을 벗었다는 듯한 후련한 표정으로…
마치 자기 자신에게 확실하게 기억하라고 각인시키듯 다짐하는 말투로 말했다.


"이젠 더 이상 그 누구도 나의 길을, 그리고 나의 의지를 막을 수 없는… 「퀴닝 폰 Queening Pawn」이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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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스 가든 - 이글루 소설가 동맹
by 요아킴 | 2008/06/20 17:51 | [정식소설] 라이드 위드 더 데블 | 트랙백 | 덧글(2) |
2008년 06월 12일
Ride With The Devil - ▶ Chapter 8 - IX. L'Hermite 隱者 (2)



소설을 보시겠어요?




-4-


Qui s'y frotte, s'y pique.
어떤 침해라도 그것에 대해 보복의 값을 치르게 될 것이다.

- 부르고뉴 대공, 무용공(武勇公) 샤를 Charles le Temeraire (1433 ~1477)





- 2006년 7월 22일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성당 앞



"내가 하나 좋은 것을 알려주지, 아가사 양."

그렇게 말하며 맥스는 어느덧 공중에서 '형상이 조립된' 거대한 『십자가』, 스티그마타를 잡고 땅바닥에 꽂았다.
마치 무덤의 묘비를 세우듯 스티그마타를 자신의 앞에 세운 맥스는 십자가의 한 트리거를 풀었다.
그와 함께 기계음이 울리며 뭔가가 십자가 안에서 연결되는 소리가 들렸다.

"……!"

맥스가 십자가로 뭔 짓을 하는 건지 의아해 하고 있던 수녀 아가사는 순간, 맥스의 의도를 알았는지 큰 소리로 주위에 외쳤다.

"다들 피하세요! 지금 이 '도망자'는!!"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 외침과 함께 맥스가 그 거대한 십자가를 '한 손'으로 들자, 십자가의 밑둥 부분이 여러 경첩으로 갈라지며 뭔가가 튀어나왔다. 거대한 대구경의 발칸 포의 포구가 그 틈을 통해 나오는 것과 함께 십자가 안에서는 동시에 탄알들이 장전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맥스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앞에 있는 『유다의 사제들』을 향해 그 십자가를 겨누었다.

"일단 「신의 사자에게는 자비 따윈 필요없어(The Angels need no mercy)」."

그와 함께 발칸포의 포신이 돌아가며 불을 뿜었다.
대구경의 '포탄'들이 바람과 공기를 찢으며 노트르담 성당 앞의 광장을 쓸어버리기 시작하자, 미쳐 피할 새도 없이 유다의 사제들의 몸이 갈갈이 찢겨져 나가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맥스는 트리거를 당기고 있는 채로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돌며 주위 반경 100미터 안의 모든 것들을 초토화시켰다.

맥스의 주위로 비처럼 쏟아지는 탄피들과 그 탄환의 '폭풍'속에서 피를 뿌리며 찢겨져 나가는 인간들…

"펑!!!"

그들이 타고 왔던 자동차들도 발칸포의 폭풍에 휘말려 엔진이 관통당하는 것과 함께 폭발하며 공중으로 치솟았다.
맥스는 발칸포를 쏘면서 옆으로 돌린 원심력으로 공중으로 점프했다가 여유있게 무릎을 살짝 숙이며 착지했다.

"콰광!"

그와 함께 공중으로 폭발하며 날아간 자동차의 형체로 땅으로 추락했다.

"이… 이럴 수가…?!"

불과 1분도 안되는 시간만에 유다의 사제들 파견 인원, 전멸….
설마 저 맥스라는 신부가 이런 '인간을 벗어난 괴물'이라는 걸 몰랐던지, 아가사 수녀는 자신을 제외하고 모조리 화염과 연기 속에서 시체 고기 조각이 된 사람들 가운데 서서 중얼거렸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콜록 콜록!"

매캐한 연기 사이에서 기침을 하는 그녀의 귀에 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가사 양은… 아니, '인간'은 잘 모르겠지만 말야, 본디 '우리들'의 목적은 그대들까지 포함한 모든 인간들의 '구원'이었어."

그 연기 사이에서 여전히 의연하게 서 있는 신부 복장 차림의 맥스는 차분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아가사에게 마치 친절하게 설명하듯이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건 '그'에 의해 부정되었고, 그 목적에 따랐던 한 '존재'가 '그'에 의해 추방당했지. 왜 그렇게 됬는지 모르겠어. 그때는 나도 그 이유를 모르고 그러려니 했는데, 이젠 알 것 같기도 해. 아마 아직도 「그대들」이 준비가 되지 않은 거라서 그런 걸꺼야."
"준비요?"
"그래, … 「구원」을 받을 준비 말이지."

이 구제불능의 색마 신부가 대체 뭐라고 지껄이고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아가사가 되물었다.

"무슨 소리인가요, 그게?"
"내가 진짜로 알려주는 이 세상의 비밀이지, 글래머 아가씨."
"웃기지 말아요, 바티칸의 죄인이여!"

그 소리와 함께 아가사가 외쳤다.

"우리의 목적이야말로 구원입니다! 구원의 그 순간까지 야훼의 적들을 절멸시키는 거에요! 그게 바로 우리 유다의 사제들의…!"
"역시 글래머 몸매에 미인인 여자가 머리가 그닥 똑똑하지 않다고 하더니 진짜로군. 정말 아무것도 몰라, 아가사 자매님."

등쪽으로 스티그마타를 돌리며 맥스는 어느새 오른손에 든 SW M500 매그넘 - 『길가메쉬』를 아가사에게 겨누며 말했다.

"똑똑히 알아둬, 자매님. 구원을 '부정'한 이는 바로 데미우르고스(Demiurges)야. 세계를 창조한 신… 그래, 바로 아가사 자매님이 말하는 「야훼」, 그가 바로 너희들이 말하는 구원을 부정했단 말이지, 하하."
"……!!"

이는 이단(異端 : αιρεσι) 소리를 들어도 모자랄 정도로 신성 모독적인 말이었다. 아가사는 맥스의 그 '용서받지 못할' 발언에 더 참지 못하고 나섰다.

"신부님의 죄목은 단순히 중징계로 끝나지 않겠군요! 보고밀 파의 이단에 물든 이단자… 당신은 개선의 여지 없이 '파문(破門 : Excommunication)'이에요!"
"이걸 어쩌나, 아가사 양. 유감이지만 주 예수께서 여기 오신다고 해도 날 파문할 수 없어, 아가씨."

그녀가 화나서 외치는 소리에 맥스는 능글능글해 보일 만큼 씨익 웃으며 답했다.

"나는 『진리』를 말하는 거야, 자매님. 그게 날 자유롭게 하지. 그래, 베리타스 보스 리베라비트(Veritas vous liberabit : 진리가 우리를 구원하리라)…."

그 말이 끝나는 것과 함께 맥스는 아가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하지만 아가사 앞에 가기도 전에 총알이 뭔가에 부딪혀 튕겨나갔다.

"?!"
"착!"

순간 의아해 한 맥스의 눈 앞에, 돌무더기가 부서진 연기 속에서 아가사 수녀가 채찍을 들고 나오는 모습이 비쳤다.
매섭게 채찍을 휘두르며 아가사 수녀는 잔뜩 화가 난, 그러나 여전히 매력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시체를 끌고 가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을 꼭 성천사 성(카스텔 산탄젤로:Castell Sant'Angelo)의 법정에 세우겠어요, 죽음의 전도사 씨!"
"호오."

감탄하는 듯이 미소를 짓는 맥스에게 아가사 수녀는 채찍으로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 『플레질런트 Flagellant (채찍 고행자)』아가사가 당신에게 고행을 통한 참회를 알게 해드리죠!"
"와~ 물론 환영이죠, 아가사 자매님. 정말 맘에 드는 고백 대사인데요?"
"!!??"

맥스는 그런 상황에서도 능글능글하게 성희롱 급의 말을 던지고 있었다.

"채찍을 든 SM풍 여왕님 계열의 수녀님이라… 이건 뭐 성인 비디오 매니아들에겐 꿈의 시츄에이션 아닌가요? 와~ 진짜 에로해요. 하하."

그 말에 완전 화가 머리 끝까지 났는지 아가사가 외쳤다.

"당신이란 사람은 정말 죽어야만 정신을 차릴 모양이군요!!! 동정의 여지조차도 없는 구제불능의 이단자 같으니라구!"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채찍을 마하의 속도로 휘둘러 맥스의 목을 향해 날린 것과 함께,

"동정이라…"

한 손을 허리에 짚고 건들건들 서 있는 채 맥스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향해 중얼거렸다.

"… 그리고 그대들이 이렇게 말할 때이다. ㅡ"

맥스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Also sprach Zarathustra'의 한 구절을 읊조리려 하는 것과 함께 채찍이 어딘가에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챙!"

하지만 그 채찍은 맥스의 목이 아닌 다른 '쇠붙이'에 감겨 있었다.

"…「도대체 나의 동정(同情)이란 무엇인가! 동정이란, 인간을 사랑하는 그가 못박히는 십자가가 아닌가? 하지만 나의 동정은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이 아니다.」"
"!?"

맥스가 그렇게 의연한 태도로 말을 끝마친 것과 함께 그의 옆으로 한 사람이 다가왔다.
그 채찍을 막아낸 것은 다름 아닌 언월도의 칼날… 그 언월도를 들고 맥스에게 날아온 채찍을 막아준 자의 인영이 어느새 맥스 옆에 와서 서 있었다.

"뭐, 그런 거죠. 동정이란 건 인간이 인간을 용서한다는 것만큼 공허한 소리니까."

마치 인생을 달관하기라도 한 듯이 훈계조로 말을 마무리하는 맥스에게 옆의 사람이 핀잔을 주었다.

"역시 맥스 군, 너는 미녀 아가씨랑 싸우기엔 너무 위험해. 이 상황에서 건들거리고 있다니 말야. 아직도 그렇게 여자를 밝히니까 문제 아냐?"
"아, 누님이군요."

맥스의 대답에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바네사가 언월도를 흔들어 창날에 감긴 채찍을 풀었다.
검은 코트에 호피무늬 비키니 브레지어를 위에 덧입은, 그 풍만한 거유에 딱 달라붙는 검은 스판 상의, 그리고 거의 팬티에 가까울 정도로 짧은 검은 핫팬츠와 가터벨트와 스타킹 조합을 한 청바지를 입은 훤칠한 키의 아가씨…
섹시한 여장부 같은 스타일을 한 미녀 아가씨 바네사는 손으로 검은 머리결을 휘날리곤 말했다.

"교황청과 가톨릭, 그리고 기독교에서 믿는 '신'이라는 게 단지 데미우르고스라니, 그렇게 주장하면서 대체 맥스 군은 왜 교황청의 신부를 하고 있는 거려나~?"
"그러게요, 바네사 누님."

비아냥거리듯이 장난스런 말투로 바네사가 타박을 주자 맥스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물론 저도 느끼고 있어요. 제가 위선자란 걸."
"그런 발언, 그런 태도를 떠나서 넌 신부 노릇을 하기엔 여자를 밝히는 게 더 문제가 될 거 같은데 말야."

그렇게 말하며 이제 바네사는 앞으로 나서서 맥스를 향해 손을 저으며 물러나라는 손짓을 취했다.

"그렇게 수작이나 걸면서 껄떡거리지 말고, 이 수녀 아가씨는 나에게 맡기렴. 차라리 내가 맡는 게 이 아가씨에게 덜 위험할 거 같은걸?"
"와~ 이런 식으로 제 데이트를 또 망치시는군요. 너무해요, 누님."

그녀의 말에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면서도 결국 맥스는 뒤로 물러섰다.
갑자기 자신 앞에 나타난 바네사란 아가씨의 출현에 아가사는 새로운 적의 등장에 긴장한 듯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뭐죠?"
"아, 전 이 신부 녀석의 「보호자」에요."

그녀의 그 발언에 맥스가 '무슨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이라고 말할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그런 그의 반응을 무시하고 바네사는 상당히 무게가 나가 보이는 그 커다란 언월도를 한손으로 들어 어깨에 걸쳤다.
마치 삼국지의 관운장의 이미지와도 같은 그런 포즈로 바네사는 당당히 서서 아가사 수녀를 향해 말했다.

"이제부턴 저, 헤이안의 미나모토 가의 토모에(巴)가 당신을 상대해 드리죠."


-*-




- 그와 같은 시각.
영국 런던, 대영 박물관 앞의 광장



"타불라 스마라그디나… 에제키엘 제 2서(Codex Zwei der Ezekiel) 개방…."

레오의 말과 함께 그의 주위에서 날개같이 펴져 있던 수백, 수천의 칼날들이 그 칼 끝을 광장의 군대들을 향해 겨누었다.

그 하나하나마다 예기(銳氣)가 맺혀 있는 '검의 형상을 띠는' 레오폴트의 '수호병'… 그 수호병들이 이제 자신들이 나서야 할 전장을 향해 살기를 띠며 떠 있는, 흰 빛의 거대하기까지 한 '아름다운 날개'를 등 뒤에 두르고… 레오는 건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코르누스 글라디우스 (Cornus Gladius : 검의 날개)」"

그 말이 끝나자마자 레오의 등 뒤의 공간에서 소환된 '수없이 많은' 검들이 광장을 향해 빛의 선을 그으며 날아가며, 마치 빛의 선이 유성과도 같이 떨어지듯, 그 수많은 검들의 날개의 '깃털' 하나하나가 광장 전체에 융단 폭격을 하듯 내리꽂히며 폭발했다.
피바다와 함께 차량들의 연쇄 유폭과 비명 소리… 순식간에 대영 박물관 앞의 광장은 지옥의 가마솥과 같은 참혹한 광경이 펼쳐졌다.

여기에 펼쳐진 것은 무수히 많은 검과 창들이 빽빽히 꽂혀 인간들을 도륙하고 꿰고 있는 철의 숲…
…그리고 광장에 매캐하게 퍼진 화약냄새와 폭발의 연기, 그리고 피의 웅덩이들이었다.

그런 광경을 무심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레오는 건조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그때 내가 말하기를 주여 언제까지 옵니까? … 주께서 답하시길 도시가 황폐해져 사람이 살지 않고 집에는 사람이 없고 땅이 완전히 황폐해질 때까지이다…." (구약성경 이사야 서 6장 9~11절 中)

그렇게 중얼거리는 레오의 등 뒤로 한 인영이 다가왔다.

"역시나 역시나… 대위님의 그 '권능'은 여전히 대단하군요."
"… 발퀴레아로군."

레오의 등에 다가와 머리를 기대며 감탄하듯이 중얼거리는 은빛 머리결의 메르세데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는 접은 부채를 레오의 어깨에 톡톡 치며 말했다.

"대위님이 발휘할 수 있는 권능은 지금의 그 '날개'보다 더 엄청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대체 대위님과 다른 두 분의 그 강대한 힘을 묶어둔 분은 누구일까 궁금하군요."
"……."
"아니, 그걸 묻기 앞서서…."

그렇게 말하며 기대고 있던 레오의 등에서 물러난 메르세데스는 이제 자신을 향해 몸을 돌린 레오를 향해 싱긋 미소지으며 물었다.

"그 힘을 묶어둔 분이 과연 '인간'이 맞는지조차 의심이 갈 정도군요."
"… 시뮬라크르(Simulacre)야."
"네?"

레오의 대답에 메르세데스는 순간 잘못 들었는가 생각했는지 되물었다.

"그래, 그거야. 사람은 아니야. 단지 '세상 그 자체'를 투영하고 반영하고 있는 '거울 속의 그림자', 시뮬라르크… 아니, 그 이상의 자이지. 그래, 그런 자이기에 '우리'를 억제할 힘을 가지고 있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 레오는 메르세데스를 차가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주위에도 어느 새 수십 개의 검들이 떠 있으면서 메르세데스를 향해 그 칼 끝을 겨누고 있었다.

"너는 무슨 일로 온 거지?"
"어머? 저는 항상 대위님의 곁에 있었어요. 모르셨나요?"

그런 차가운 레오의 태도에도 메르세데는 요염한 태도로 레오에게 유혹하듯 말하고 있었다.

"저는 어디에도 있을 수 있고, 어디에도 없을 수 있는 존재… 어디서든 나타나 발할라에 속할 운명인 전사들에게 전장의 나팔 소리를 전하는 전령인 전쟁의 여신 '발키리(왈큐레)'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싱긋 웃어보였다.

"이제 또 다시 전장으로 가셔야겠군요. 이번에는 우리들 '아발론'마저도 적으로 삼은 전쟁을 말이죠."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
"결국 대위님에겐 '근위병 Pegnas'보다는 '전사들의 군주 Drythten'가 더 어울리는 거 같아요."
"그런가…."

그녀의 말에 레오는 그런 자신의 모습이 후회라도 되는 듯 한숨을 쉬고 말했다.

"결국 내가 택하는 길이 '내가 제일 증오하는 자'와 비슷하게 되는 길이 되었군."
"악마를 처단하고 처단하고… 그렇게 처단한 파프니르의 피를 뒤집어 쓴 기사 '지그프리드'도 결국 괴물이자 악마가 되어 버린다… 그런 셈이죠."
"… 난 더 이상 지그프리드가 아니야, 메르세데스."

그렇게 말하며 이제 뒤돌아서 발걸음을 옮기려는 레오. 그런 그를 뒤에서 바라보며 뭐라고 말을 건네려는 메르세데스에게 들으라는 듯이 그가 말했다.

"너의 인도는 필요없다. 내가 가야 할 전장은 내가 알고 있으니."
"루 라바다와 싸우러 가시는군요."
"응. 그렇게 됬군."

레오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뭔가 짜증난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그 빌어먹을 해리스 놈 동상의 목을 떨어뜨려 주겠어. 애송이 란돌프 녀석의 목도 같이 말야."


-*-



"여어, 오셨군요. 대위님."

란돌프가 라운더부트(Roundabout) 거리 중심에 선 차 위에서 손을 흔들어 레오에게 인사를 건넸다.
물론 차 위에서 인사를 한 건 그닥 어색한 건 없었다. 다만 그 차가 동상 기단에 「박혀져」 꽂혀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게 많은 녀석들이 있었는데, 빨리 오셨군요."
"아아, 귀찮아서 단번에 끝내고 왔지. 알렉산더 때처럼 일일이 싸워주는 쇼를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레오는, 불타고 있는 자동차들과 돌더미들로 가득찬 라운더부트 거리 가운데의 폐허를 걸어오며 어깨를 움직여 몸을 풀었다.

"그건 그렇군요. 역시 지그프리드 대위님다운 말씀이십니다."

란돌프는 그렇게 답하며 그 차 위에서 뛰어내렸다.

"조만간 저희 아발론도 다시 움직일 겁니다. 저는 그 준동의 첨병인 셈이구요. 그런데 정말 대위님은 저희와 같이 가실 생각이 없으신 겁니까?"
"같은 말을 몇번씩 하게 만드는지 모르겠지만 슬슬 짜증이 올라오려고 하는군."

레오는 입술쪽을 약간 일그러뜨리면서 답했다.

"네놈들이 대체 뭘 생각하는지도 모르겠고, 그걸 알고 싶지도 않다. 이게 이유야."
"우리가 뭘 생각하는지 모르겠다구요? 정말입니까? 대위님이 더 잘 아실 텐데요?"

란돌프가 반문하며 말했다.

"여기 이렇게 당당하게 서 있는 동상을 보십시요. 드레스덴의 도살자를 당당하게 영웅으로 대우하며 동상까지 세운 놈들입니다. 아마 영국인들의 생각으로는… 아니, 전세계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이미 세계 대전이 끝났다고 생각한 거겠죠. 그러니 이딴 걸 세운 거 아닙니까?"

그렇게 말하며 란돌프가 다트를 휘두르자 동상의 머리 부분이 통째로 뜯겨져 나가 바닥에 쳐박혔다.

"하지만 아직 우리들에게는 그 전쟁이 끝나지 않은 전쟁이지 않습니까? 그 많은 파괴와 증오와 고통과 격노… 그것은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의 잔상들입니다. 지금 우리들과, 대령님이 원하는 건 바로 그 끝나지 않은 파멸을 위한 끝없는 전쟁이란 말입니다!"
"… 결판을 내지 못한 대영 제국을 붕괴시키고 또다시 세계를 전쟁의 참화 속으로 밀어넣겠다… 그게 대령의 목적인가."

그렇게 말하다가 레오는 뭔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으로 다시 말을 고쳤다.

"… 아니, 어쩌면 너희들 스스로도 파멸하는 것까지 원하고 있는 것이겠지, 구시대의 망령들이여."
"망령이라… 저희들을 지칭하긴 뭐, 괜찮은 표현 같은데요?"
"란돌프 너도 알다시피, 망령을 가장한 채 날뛰면 너 또한 언젠가는 망령이 되고 말거야."
"칼 마리아 폰 베버의 《마탄의 사수》에 나오는 소리였죠, 그거? 뭐, 아무렴 어떻습니까? 어차피 우리는 50년 전부터 죽음을 거부당했었습니다. 이제 와서 뭘 새삼스럽게…."
"그래?"

그의 그 대답이 우습게 느껴지는지 레오가 비웃듯이 입술을 비틀었다.

"잘 모를 거야. 그게 어떤 기분인지…. 너희들이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옛날부터 '죽음'이란 '안식'을 강탈당한 망령이 된 그 '저주'가…."

그렇게 말하며 레오는 순간 양손에 『디 라이네』권총과 코카라스마루(小烏丸)를 뽑아들며 말했다.

"…얼마나 엿같은지를 말이야!!!!"

그와 함께 란돌프가 폭발하듯이 주위의 공기를 일그러뜨리고 '점프'를 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레오는 그걸 예측이라도 한 듯, 옆의 한 공간으로 총구를 돌려 총을 쐈다.그 공간에서 총알이 튕겨나가는 소리와 함께 레오는 칼을 휘둘러 자신에게 날아온 다트를 튕겨냈다.
그리고 란돌프는 '점프'를 이리 저리 구사하고 레오는 그에 따라 전혀 어려움 없이 대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총알과 다트에 의해 라운더부트 거리는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어 가고 있었다.
주위의 건물들의 난간이며 주차되어 있는 차들이며… 모두 그들의 싸움에 휘말려 파괴되고 폭발을 하고 있었다.

"그래요, 그 '불사'라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건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한 번 저에게 왜 그런지 한번 알려주시죠!"

그렇게 말하며 '점프'를 하는 것과 동시에 란돌프는 그 몸을 '공간 이동'으로 돌려 워털루 광장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콰광!!!"

아무 어려움 없이 광장 가운데의 넬슨 동상의 받침 기둥을 발로 차 부러뜨렸다. 적어도 100미터가 넘는 거대한 원주 기둥이 그의 발에 의해 허망하게 부서져 넘어가고 있었다.
그 기둥이 땅으로 기우는 걸 보자 란돌프는 공중으로 다시 뛰어 그 기둥을 붙잡고는 그 기둥과 '함께'… '점프'를 했다.

"!!!"

레오는 순간 눈을 의심했다. 어느 새 자기 머리 위의 공중에 나타난 란돌프는 그 거대한 기둥을 들고 망설임 없이,

"어디 이걸 한번 막아보시죠!"

자신을 향해 창을 던지듯 집어던졌다. 그러나,

"소용 없어."

레오는 그 상황에서도 당황함 없이 당당히 그 기둥을 향해 오른손을 내밀었다.

"!!??"

그러자, 순간 그 주위의 모든 공기와 거리와 물체가 '멈췄다'…!
마치 흑백화면이 펼쳐진 것처럼 완전히 정지가 된 공간… 그 공간을 '불러낸' 레오는 왼손에서 뭔가를 소환했다.
그것은 초장거리 요격용 대형 미사일 런처…

"이것은 척안을 가진 자의 신창 『궁그닐(Gungnir)』… 그래, 척안의 눈을 들어 그 사피엔테스 그라디오(Sapientes Gradio : 검을 든 현자)는 눈 앞의 대적자에게 이 창을 날린다…."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리와 함께 궁그닐이 바닥에 박히며 레오가 트리거를 당겼다.
순간 레오 머리 위의 상공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울렸다.
동상의 기둥은 포탄에 맞아 산산히 폭발하고, 그 위는 폭발 시의 화염에 의해 싸그리 불타 버렸다.

하지만 란돌프의 모습은 거기에 없었다.


-*-



"헉… 헉…!"

겨우 아까 전의 폭발에서 '점프'로 빠져 나온 란돌프는 옆에 있는 거대한 시계 바늘을 손으로 쥐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영국 템즈 강 연안에 있는 국회 의사당의 명물 빅 벤(Big Ben)… 그 시계탑의 시계판 밑에 있는 난간에 꿇어앉아 숨을 고르고 있는
란돌프는 불에 그슬려 타기 직전까지 간 듯한 옷을 걸치고 있었다.

"후우… 이럴 수가."

마치 날개같이 불꽃을 펄럭이며 란돌프가 놀랐다는 듯이 말했다.

"역시 대위님의 궁그닐… 하마터면 끝장날 뻔했군."

그렇게 한숨을 돌리려는 란돌프의 눈 앞으로 뭔가가 휙 하고 지나갔다.

"!!?"

그와 함께 란돌프의 얼굴 옆으로 시계탑 일부가 부서지며 파편이 튀겼다.

"읏!!!"

그 시계탑에 맞은 '총알'은 반대편까지 뚫고 나갈 정도로 강력했다. 이 총알이 대체 어디에서 온 거란 말인가…
그 순간 란돌프는 불안한 느낌으로 그 총알이 온 곳을 쳐다보았다.

… 설마 거기서…




"어디 한번 뜀박질 해봐라, 루 라바다."

아까 전 란돌프의 눈앞에서 바로 로켓포를 먹인 레오는 이제 오른손에 독일제 저격총 H&K PSG-1을 들고 있었다.
목이 부서진 아서 T. 해리스 동상을 밟고 서 있는 그는 이제 오른손에 들고 있던 그 저격총을 '한 손'으로 들어서 눈에 희미하게 보일락 말락한 거리에 서 있는 영국 국회의사당 시계탑을 겨누고 중얼거렸다.

"이 '석궁'으로 네 머리통을 날려주마."

아까 전 란돌프의 눈앞을 스치고 지나간 그 총알은 바로 그곳에서 수백 미터나 멀리 떨어진 이 곳에서 레오가 쏜 것이었다.
그렇게 긴 거리와 중력, 습도, 풍향까지 모두 반영을 해서 계산을 해야 맞출 수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레오는 '조준'조차 하지 않고 란돌프를 향해 총을 쏜 것이었다. 마치 권총이라도 쏘듯이.
이제 그는 PSG-1의 탄피를 빼내곤 다시 재장전을 하며 총을 들어 란돌프가 '있을' 곳에 겨누며 말했다.

"「타불라 스마라그디나」라지엘 제 5서(Raziel Codex 5) 개방… 패스워드 『빌헬름 텔 Wilhelm Te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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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스 가든 - 이글루 소설가 동맹
by 요아킴 | 2008/06/12 17:36 | [정식소설] 라이드 위드 더 데블 | 트랙백 | 덧글(4) |
2008년 03월 03일
Ride With The Devil - ▶ Chapter 8 - IX. L'Hermite 隱者 (1)



소설을 보시겠어요?








▶ Chapter 8 - IX. L'Hermite 隱者





Ho kosmos holos en to penero keitai

이로서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다.


- 요한 복음 1서 5장 19절




-1-




- B.C. 331 9월 24일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 바빌론.




불안한 마음이 다 드러나는 얼굴을 한 남자가 궁전의 복도를 급한 걸음으로 지나고 있었다.
화려한 옷차림에 지위가 높은 사람인 듯, 그가 지나는 복도마다 내관들과 시녀들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그에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는 급한 걸음을 늦추지 않은 채 계속 어딘가로 바삐 걸어가고 있었다. 그의 뒤를 따르는 신하 둘이서 허겁지겁 황급하게 걸음을 따라갈 정도였었다.
그가 가는 곳마다 막혀 있는 모든 문이란 문은 신하들에 의해 자동문 같이 미리 활짝 활짝 열렸다.

"쾅!"

그리고 마침내 커다란 소리와 함께 그 남자가 찾던 방의 문이 열렸다.

"…무슨 일인가?"

그 방 안에서 시선을 돌려 무언가를 찾던 남자는 창가 테라스의 난간에 걸터 앉아 바깥을 내려다 보는 은빛 머리의 남자를 발견했다. 뒤에서 부드러운 손으로 아름다운 궁정 시녀가 어깨를 주물러 주고 있는 채 손에 술잔을 들고, 그 남자는 마치 주연이라도 나온 듯이 흥청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약간 화가 난 듯 그 남자가 물었다.

"이야기는 들으신 겁니까!?"
"아, 물론이지. 다리우스."

여전히 그 은빛 머리의 남자는 다리우스라는 이름의 그 남자에게 눈길도 돌리지 않은 채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은빛 머리의 남자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은 상당히 놀라운 행동이었다. 지금 이 은빛 머리의 남자가 다리우스라고 부른 대상이 다름 아닌 페르시아 제국의 황제 다리우스 3세라는 걸 아는 사람이 본다면 말이다.

"아, 저기 출발하는군. 자네 군대의 제 1진이야. 위세가 대단하구만 그래."

그 은빛 머리의 남자는 술잔을 입가에 가져다 대고 한 모금 마시곤 잔을 들어 건배하는 듯한 행동을 취했다. 마침 밑에서는 바빌론에서 출정하는 페르시아 군대를 축복하기 위해 수십만의 전 시민들이 나와서 거리를 가득 메운 채 군사들을 향해 꽃을 뿌리고 있었었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 중의 장관… 그런 화려한 광경에 취한 듯 건배하는 포즈를 취하며 그 남자가 말했다.

"이 시민들이 언젠가는 다시 이 도시로 개선하는 군대를 향해 꽃을 또 뿌리겠지. 그게 페르시아의 군대든… 아니면 그 '마케도니아 촌놈'이 이끌고 있는 군대든 간에 말이야."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분명 이 남자, 다리우스 3세는 이곳 바빌론의 주인이자 이 페르시아 제국의 황제인 자였다. 적어도 그의 땅, 그의 도시 안에서는 그 누구도 그에게 반말은 고사하고 감히 그 얼굴을 올려다 볼 수조차 없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다리우스는 자신의 앞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시녀의 어깨 안마를 받고 있는 정체불명의 그 은빛 머리 남자에게 놀랍도록 공손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과연 저의 나라, 저의 이 도시는 괜찮겠습니까… 이 도시와 이 나라의 근원이 되는 땅, 칼데아의 수호신이신 분이시여?"
"무엇이 걱정된단 말인가, 다리우스여?"
"알렉산드로스의 군대 말입니다."

… 그 다리우스의 입에서 마케도니아의 왕, 그리고 이 땅의 침략자인 알렉산더의 이름이 나왔다.

"알렉산드로스 왕이라…."

하지만 그 은빛 머리의 남자는 별다른 인상을 받지 못했는지 덤덤하게 대꾸했다.

"그래, 그리스 올림피아의 신 제우스와 저 이집트의 신 아몬 라(Amon-Ra)의 '아들'이라고 '자칭'하는 그 남자가 이끄는 마케도니아의 군대…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들은 결국 그리스 반도의 소국에서 온 군대일 뿐이지. 뭐가 두렵다는 건가, 다리우스?"
"얕볼 수는 없는 녀석들입니다, 그 그리스 놈들은."

다리우스 황제의 말이 이어졌다.

"지난번 이수스 전투에서 그 녀석은 승리를 한데다 저의 어머님과 딸을 인질로 잡아갔습니다. 전 그들 둘을 돌려받기 위해 알렉산드로스에게 땅과 제 딸과의 결혼을 댓가로 제시했지만 그 녀석은 거절했습니다. 분명합니다. 그 녀석은 계속 전쟁을 원하고 있는 겁니다. 애초에 이 나라를 노리고 온 거라구요!"
"그래…. 그렇겠지."
"…?"

그 말에 수긍하는 어조를 하는 그 남자에게 다리우스가 의아해 하는 것도 잠시 그 남자는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그리고 '그 빌어먹을 자식'은 알렉산더를 따라서 여기 있는 '그것'을 노리고 온 거고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그 남자는 약간 기분이 나쁜 듯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걸 위해 여기까지 온 거겠지. 알렉산더 그 녀석을 이용해 가면서까지… 여전히 옛날과 다를 바가 없는 비열한 녀석이야, 그 '배신자' 놈은."

그 남자의 반응에 다리우스는 이번엔 어쩔줄 몰라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분명 한 나라의 황제에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지만, 다리우스는 적어도 이 은빛 머리 남자의 앞에서는 이래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알았네. 걱정은 말게, 다리우스. 내가 그대와 함께 직접 출정하지. 그 전에 시녀들과 회포나 풀고 있든가 하게. 전장에 나가면 한동안 그럴 짬이 없을 터이니."
"위대한 존재이신 당신만 믿고 있겠습니다."
"걱정말게. 나도 '그 녀석'을 꼭 죽여야 하니까."

그렇게 말하며 이젠 그 은빛 머리 남자는 무덤덤한 표정을 여전히 바꾸지 않은 채 귀찮다는 듯한 태도로 손을 들어 다리우스에게 나가라는 시늉을 했다. 그런 그의 손짓에 다리우스 3세는 다시 머리를 조아리고는 물러났다.

"……."

한참을 그렇게 창가에서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 남자는 이젠 자신의 어깨를 안마하고 있던 시녀에게도 나가라는 듯이 손짓을 했다. 그녀도 역시 공손히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났다.

"대체…."

끝도 없이 이어지는 페르시아 군의 당당한 행렬… 거리를 가득 메운 그 모습을 바라보던 그 남자는 아주 못마땅하다는 듯 얼굴 표정을 풀지 않은 채 말하고 있었다.

"대체 이런 '인간'들을 위해 뭐하러 여기까지 그 그리스 놈들을 데리고 온 거냐, 네 녀석은…."

그 말과 함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선 문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치 한 나라의 왕이라도 지나가는 듯 궁정의 모든 사람들도 그 은빛 머리의 남자가 지나갈 때마다 공손하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사람들의 반응은 신경도 쓰지 않는 채 궁전의 정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정원을 지나 이젠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 한 건물에 도착한 그 남자는 발걸음을 멈춰 자신의 눈 앞에 놓여진 거대한 문을 바라보았다.
화려한 장식은 없지만 그 자체의 크기만으로도 위압감을 주는 거대한 문… 그 문을 그 남자가 손으로 밀어 열자,

- 샤아아…

이 사막 위에 세워진 바빌론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 그 문 안에서 스며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냉기(冷氣)였다.
마치 거대한 얼음 창고라도 되는 듯 그 안에서 엄청난 양의 냉기가 문을 통해 바깥으로 스며 나오고 있었다.

"… 「영혼의 새장」 ."

그리고 그 냉기에 휩싸여 모습이 부옇게 보이는 그 거대한 '무언가'를 바라보며 그 은빛 머리의 남자가 말했다.

"이 나라를 연 네부카드네자르의 「유산」… 이걸 가지기 위해 알렉산드로스라는 자까지 도구로 쓸 생각이란 말이냐, 네놈은."



-*-




- BC.331 10월 1일
소아시아의 가우가멜라 평원




독수리 한 마리가 창공을 유유히 날고 있다.
위풍당당하기 이를데 없는 창공의 왕인 이 독수리가 지상을 두리번두리번 하며 내려다보고 있는 평원… 그 독수리의 눈에 비치는 것은 이 가우가멜라 평원의 한쪽에 도열해 있는 수천의 마케도니아 군대의 모습이었다.

"……."

그 군대 가운데 말을 타고 있는 검은 머리의 한 장수가 공중을 올려다보곤 그 독수리를 바라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제우스… 당신은 독수리로나마 자신의 '아들'의 승리를 보러 온 것인가…."

그렇게 중얼거린 그 검은 머리의 장수는 다시 그 시선을 돌려 도열해 있는 군대 앞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에 비치는 건 이 마케도니아 군대 앞에서 그들을 격려하는 장수의 모습이었다.
그는 병사 하나하나마다 말을 걸며 그들의 고향을 일일이 언급하며 격려와 위로의 말을 건네주고 있었다. 그 병사들 하나하나마다 고향이 어디인지를 다 기억하는 듯 그 장수는 전혀 막힘없는 모습이었다.
그런 그 장수의 위로와 격려에 병사들은 각자 얼굴에 자랑스러움과 감격, 경의를 표하며 그 장수를 숭배하듯 올려다보고 있었다.

"우리 마케도니아의 위대한 병사들이여!"

콧김을 내뿜는 흉포한 검은 명마(名馬) 부케팔루스… 그 말을 타고 있는 장수는 두 개의 깃털을 마치 '뿔'과도 같은 모양으로 꽂은 투구를 쓴 채 당당한 모습으로 병사들 앞에 있었다.
그 장수가 바로 위대한 '두 개의 뿔'의 제왕인 「이스킨다르(Iskindar)」… 후세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으로 불리는 남자였다.

"우리는 드디어 여기까지 왔도다! 그대들 무적의 정예병, 일당 백의 자랑스런 전사들이 드디어 여기까지 온 것이다!"
"와아아!!!"

그의 말에 병사들은 목이 터져라 환호성을 지르며 화답했다.

"그리고 그대들의 앞에는 우리 승리의 제물이 될 운명인 페르시아의 대군이 있다! 그렇다, 내가 선언하건데 그들은 '세계의 끝'을 향해 전진할 우리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말하며 그가 지휘봉으로 가리키고 있는 곳에는 지평선을 가득 메우고 있는 페르시아의 수십만 대군이 있었다.
지평선에서 빈틈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그 대군에도 알렉산더는 전혀 기죽지 않은 당당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우리들의 승리는 확실하도다! 그대들에게 내가 보여주지 않았는가! 고르디온(Gordion)의 매듭을 풀어낸 것을!"

그 말에 그 병사들은 전에 있었던 그 기적을 기억해냈다.
고르디온의 신전에서 자신들의 위대한 왕이 수레에 묶인 그 전설의 매듭을 칼로 끊어 풀어버렸던 그 모습을… 그리고 그걸 축복하기라도 하듯 하늘에서 울린 제우스의 천둥 소리를…

"고르디온의 매듭을 푸는 자는 아시아의 제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은 말했다! 그리고 내가 바로 그 매듭을 풀었다! 그 아시아의 제왕인 나의 자랑스런 전사들인 그대가 이 전투에서 질 리가 없잖은가!"
"와아!!"
"자, 보라! 나의 병사들이여! 그대들의 눈 앞에 승리가 있도다! 그리고 그대들의 눈 앞에 그대들이 약탈할 보물들과 미녀들로 가득한 바빌론이 있도다!"

점점 격앙되는 병사들… 이제 알렉산더는 자신이 들고 있는 검을 힘껏 치켜올리며 외쳤다.

"모두들 전투에 대비하라! 이제 곧 우리들이 바로 아킬레우스, 헤라클레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전설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와아아!!!"
"그렇다! 지금 여기서 우리가 바로 전설이 되는 것이다!!"
"대왕 만세!!!"

병사들은 일제히 자신들의 창을 하늘로 치켜들며 자신들의 위대한 왕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런 그들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는 알렉산더는 이제 시선을 돌려 아까 전 그 검은 머리의 장수에게 말머리를 돌려 다가갔다.

"뭘 보고 있나, 자네?"
"아아, 저길 보고 있었지."

그 검은 머리의 남자는 손을 들어 하늘에 있는 독수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네의 아버지 제우스가 자네를 보러 온 것 같군. 그대가 가지게 될 승리를 축복하기 위해서 말야."
"그래? 하하."

그 남자의 말에 알렉산더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정작 자네는 어찌 생각하는가? 우리의 승리를 자네도 확신하는 건가, '세계의 왕'이여?"
"자네라면 가능하고도 남지."

그 검은 머리의 남자도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데 날 부를 때는 '세계의 왕'이라고 부르지 말아주었으면 하네만."
"왜, 듣기 싫은 건가?"

알렉산더가 되묻자 그 검은 머리의 남자는 알렉산더를 똑바로 바라보며 다짐하듯이 말했다.

"지금은… 자네야말로 진정한 '세계의 왕'이잖은가?"
"그래?"

그 말에 기분이 정말 좋아진 듯 알렉산더는 활짝 미소지으며 그 검은 머리 남자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선생님 말씀대로야. 역시 자네는 재미있는 친구라구. 하하핫."
"그런가?"
"그렇고 말고. 그뿐만이 아니지. 자넨 우리 마케도니아의 수호신이자 아레스(Ares : 전쟁의 신)이고 말이야. 자네와 함께라면 인도까지도 갈 수 있을 것 같아."
"자네가 원한다면 세계의 끝까지라도 같이 가주지."
"그렇다면 좋고말고. 승리의 여신 니케(Nike)도 자네에게 아양을 떨며 구애하고 있지 않은가?"

쾌활하게 말하는 알렉산더… 그런 그에게서 눈을 돌려 그 검은 머리 남자는 페르시아 진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필요하다면 니케의 멱살을 잡아 끌고 와서라도 자네에게 승리를 주겠어. 그 빌어먹을 '새장'만 되찾는다면 말야."
"…."

'새장'이란 말을 언급하자 알렉산더도 순간 웃음을 거두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새장이라… 그게 자네가 찾는 그것인가?"
"그래, '영혼의 새장'… 「도메스 포라다(Domes Porada)」…."

그 남자의 대답에 알렉산더가 물었다.

"그래, 자네가 그걸 찾는 이유가 뭔가?"
"이유? 그걸 '인간'이 알아서 뭐하려고?"

그 남자가 그렇게 되묻자 약간 머쓱해 하는 알렉산더… 하지만 알렉산더는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말하자면 그건…'세계의 왕'만의 이유인 건가?"
"그건 아냐, 알렉산더."

그 남자는 자신도 이런 처지가 싫다는 듯 한숨을 푹 하고 내쉬곤, 약간 지친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우리 마케도니아의 군대 안에 있는 '그 친구' 뿐만 아니라 저기 페르시아 군 안에도 있을 나의 '동생'… 우리 '시간의 방랑자들'이 이 빌어먹을 세상을 떠돌아 다니는 이유인 것이지."
"……."
"그래… 이젠 '전설'이 된… 후에도 전설이 될 우리의 '목표'라구, 알렉산더…."



-2-




"진격!!"

알렉산더의 외침에 전투가 시작되었다.
드넓은 평원을 가득 메우며 달려오는 페르시아의 전차병과 보병들… 얼추 가늠해서 보기에도 저들은 적어도 이쪽의 5배 이상의 병력인 듯했다. 하지만 마케도니아의 군사들은 전혀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
중앙으로 페르시아의 전차부대가 돌격했다.

"진형을 짜라!"

지휘관들의 외침에 마케도니아의 자랑인 중창기병들이 팔랑크스 진형을 짰다. 사각형 꼴로 모여 앞에서부터 창을 앞으로 내밀어 버티는 그 진형에 전차부대는 맥을 못추고 와해되기 시작했다.
전차부대가 저지하는 것과 함께 알렉산더는 미리 파르메니온 장군에게 좌익을 맡기고 페르시아 군의 우익을 막게 하고는 자신이 이끄는 우익은 직접 기마 부대와 보병들을 이끌고 페르시아의 좌익과 중앙을 향해 돌격하려고 했다.

"지금까진 괜찮은 것 같군, 알렉!"

그 검은 머리의 남자가 알렉산더를 향해 외쳤다.

"나는 미리 가서 좌익을 잡아두겠어! 자네는 원래 작전대로 다리우스를 향해 나아가게!"
"자네는 어디 가려는 건가!"
"내가 여기서 어딜 가겠나!"

그 검은 머리결의 남자는 손에 든 창을 들어 보이며 여유 있는 미소를 띠며 외쳤다.

"저 녀석들의 좌익을 박살내고 다리우스의 목을 가지러 가는 거야!"



-*-




"난 따로 부대를 이끌고 가지."

페르시아 군의 장수 베소스에게 지시를 내리며 그 은빛 머리의 남자는 다리우스를 향해 말했다.

"직접 출전하시는 겁니까?"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 중 가장 확실하고도 빠른 방법이 있지. 바로 알렉산드로스의 목을 따오는 거야."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태연하게 그런 말을 하며 그 남자는 먼지 구름으로 가득한 전장에 시선을 돌린 채 말했다.

"저런 패기가 넘치는 왕은 항상 선두에 나서게 되어 있어. 그게 그 왕의 힘과 권력의 원천이니까. 즉, 다시 말해서 저 왕의 목만 따면 이 전투는 끝난단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그 남자는 베소스와 함께 전장으로 돌격한다.

"자, 가자!"

먼지를 날리며 전장으로 돌격하는 수십의 기병들… 은빛 머리의 남자가 창을 휘두를 때마다 마케도니아의 병사들 수십이 피를 흩뿌리며 쓰러져 갔다.
그런 걸 아주 지겹다는 듯한 표정으로 무뚝뚝하게 바라보며 창을 휘두르는 그 은빛 머리의 남자…
하지만, 얼마 시간이 흘렀을까…

"……?!"

순간 그 남자는 행동을 멈추었다.

"…결국 왔군."

어디선가 느껴지는 그 '배신자'의 존재의 느낌… 그건 그로서는 수많은 세월 동안 전혀 퇴색됨이 없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그런 '불쾌한 느낌'이었다.

"… 결국 네놈도 여기까지 온 거냐!"

그렇게 외치며 그 은빛 머리의 남자는 베소스와 휘하 장수들을 내버려 둔 채 이곳 페르시아 군의 중앙으로 진격해 들어오는 마케도니아 군의 우익의 별동대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




"아, 짜증나네 이거!"

마케도니아 군의 파르메니온 부대 소속의 보랏빛 머리의 남자가 그렇게 외치며 창을 휘둘렀다. 말에 올라탄 채 힘차게 휘두르는 그 창의 칼날에 또다시 수십의 페르시아 병사의 피가 공중으로 흩뿌려졌다.
그 모습은 가히 일기당천의 사신(死神)… 전혀 지친 기색도 없이 수백의 병사들의 피를 뒤집어 쓴 채 그 남자는 파죽지세로 병사들 사이를 누비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얼굴에는 피곤함과 고통 대신 뭔가 모를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이 빌어먹을 지원군은 올 생각도 않는군. 게다가 이렇게 지겹도록 놈들은 모여들고!"

그렇게 말하며 그 남자는 다시 세 명의 병사들을 일격에 쓰러뜨렸다.
작전대로라고는 하지만 솔직히 수적으로 훨씬 우세한 페르시아 군의 우익을 마케도니아 군의 좌익만으로 버티기에는 무리이긴 했던 것이다. 하물며 그게 페르시아 군의 중앙이 와해댈 때까지 '버틴다'는 것이라면 더욱 더 무리인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 남자는 그렇게 버티는 게 힘들다기보다는,

"빌어먹을! 차라리 성질대로 할 거면 여기 평원에다 태양을 하나 떨어뜨리는 게 낫겠네! 이거 뭐 귀찮아서 해먹겠나!"

… 그 대군의 공격이 '성가신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의 성질대로 하면 안된다는 사실은 자기 자신이 더욱 더 잘 아는 사실… 그래서 그런지 그 남자는 더욱더 불만에 가득한 듯했다.

"젠장!"

그렇게 외치며 그 보랏빛 머리의 남자는 다시 페르시아 군을 베어 넘겼다. 그리고 이제 그는 창을 들어 그것에 기(氣)를 가득 불어 넣고는,

"아, 꺼져!"

그 외침과 함께 땅바닥에 창을 힘차게 내리찍었다. 그 창이 땅에 박히는 것과 함께 그 주위로 커다란 바람이 몰아치며 주위 수백의 병사들을 원형의 충격파로 폭발시키듯 날려버렸다.

"감질나게 이따위로 할 바에야…!"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 남자의 움직임이 일순간 멈추었다.

"…!!?"

그 순간 그는 느꼈다. 그랬다. 언젠가는 예상했었던 그것이었다.
…그들 둘이 다시 만난 것이었다.



-*-




마침 우익군 중 몇 명의 기병만 이끌고 다리우스의 진영을 누비고 있던 검은 머리결의 그 남자는 옆쪽으로 몰아친 다리우스의 별동대와 조우했다.
미친 듯이 병사들을 베어 넘기고 있는 그에게 한 남자의 외침이 들렸다.

"배신자! 거기 있나!!"

그 소리와 함께 뒤돌아 본 검은 머리의 남자는 일격에 날아온 창을 막아내곤 그 창의 힘에 밀려 말에서 거꾸러 떨어졌다.

"크윽!"

통증에도 불구하고 땅바닥에서 힘겹게 일어서는 그 남자에게 아까 창을 휘두른 장수가 다시 돌격해 왔다.
다리우스의 장수 베소스를 이끌고 온 정체불명의 그 은빛 머리의 남자가 창을 꼬나들고 매서운 기세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

그 검은 머리의 남자는 말없이 피식 웃으며 말을 타고 달려오는 그 은빛 머리의 남자를 향해 자신도 달려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 은빛 머리의 남자와 몇 걸음을 앞두고 그 검은 머리의 남자는 발돋움을 해 앞으로 힘껏 뛰어 그에게 날아들었다.

"!!"

아까전 달린 기세로 날아든 그 검은 머리결의 남자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은빛 머리의 남자가 타고 있던 말의 머리에 주먹으로 일격을 가했다.
말의 단말마가 울려퍼지고… 검은 머리의 남자가 날린 일격의 주먹에 그 말은 바로 머리가 깨져 피를 토하며 앞으로 쓰러져 나뒹굴었다.

"크윽!!"

은빛 머리의 남자도 그 기세에 말에서 떨어져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크… 이런 젠장!"

그리고 황급히 일어서며 옆에 꼬나든 칼을 꺼내들려는 그 은빛 머리의 남자의 목에 어느새 서슬퍼런 칼날이 다가와 있었다.

"……."
"네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거냐?"

그 검은 머리결의 남자가 칼을 겨누고 하는 질문에 은빛 머리의 남자는 피식 웃으며 긍정했다.

"그래, 그렇다. 서로가 서로의 '왕'을… 상대방의 '말'을 죽이기 위해 나선 거지."
"네놈에겐 다리우스는 '말' 따위밖에는 안되겠지만 나에게 알렉은 단순한 '말' 따위가 아냐."
"그거야 두고 보면 알겠지. 우리의 이 방황의 편력에서 또다시 이런 일이 없으리라 누가 보장하겠어?"
"……."

코웃음 치며 비웃는 듯한 은빛 머리 남자의 말에 검은 머리의 남자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제 의연히 이 혼돈의 전장 속에서 일어서며 그 은빛 머리 남자는 검은 머리 남자를 똑바로 마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어디 한번 해 보라구. 네가 마케도니아의 '꼭두각시'를 데려 오면서까지 찾고자 하는 그 빌어먹을 '새장'을 원한다면 말야. 그러고 싶다면 말야…."

그렇게 말하며 은빛 머리의 남자는 싸움을 하려는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일단 네놈의 '꼭두각시'를 죽이려는 날 쓰러뜨려.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겟지만."
"… 내가 못할 것 같아, 나의 동생?"

그 '동생'이란 말에 그 은빛 머리의 남자의 안색이 확 바뀌었다.

"동생?!! 그렇게 날 부르지 말라고 했을텐데!"
"네놈이 감히 그럴 수 있다면, 한번 내 입을 다물게 해 봐."

그 말과 함께 그 둘의 모습이 일순간 사라졌다. 그와 함께 한번 검이 부딪히는 소리… 여전히 그들 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순간 그들 둘이 칼을 맞대는 모습이 이곳… 저곳… 여러 군데에서 동시에 나타났다.
마치 정지 화면과 같이 영상이 동시 다발적으로 보이는 그 모습… 그들 둘은 그 순간 거의 음속을 뛰어넘는 속도로 움직이며 검격을 나누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일순간 정지된 것 같은 주위의 병사들의 모습과 더불어 아주 이상한 광경이었다.
그 짧은 시간이 끝나자마자 4번째의 칼의 검격 소리가 울렸다.

"챙!!"

그 소리와 함께 그들 둘의 주위에 있던 병사들이 그 칼이 부딪힌 기세가 만들어 낸 충격파로 날아가 버렸다. 기마병, 전차병까지… 그리고 그들이 타고 있던 말과 마차들까지…
말들과 인간의 고통의 외침이 울리며 어지러운 이 전장 가운데 은빛 머리의 남자가 입술을 깨물며 분하다는 듯이 말한다.

"감히 배신자 주제에…."
"배신자?… 하하. 그래."

그 말이 우습다는 듯이 검은 머리결의 남자는 씩 웃으며 오른손을 옆으로 들어 뭔가를 하려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똑똑히 봐둬라, 널 쓰러뜨리기 전에 말야. 그래, 네놈이 말하는 그…"

그와 함께 그 남자의 손 주위로 바람의 기운이 엄청난 기세로 모여들고 있었다. 길이가 족히 2미터는 넘을 듯이 엄청나게 긴 모양을 이루며 모여들고 있는 그 바람의 기운은 이제 주위에 방전이라도 하듯 격렬한 번개까지 발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그 바람의 기운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두 개의 칼날이 그 은빛 머리 남자의 눈에 들어왔다.

바람을 지배하는 왕을 추적하는 자의 성검…
그 은빛 머리 남자가 익히 아는 검이 지금 자신의 눈 앞에서… 가우가멜라 평원에서 소환이 되고 있었다.

"… 설마『우레폭풍』 인가?!"

이제 그 검은 머리의 남자는 그 은빛 머리의 남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외쳤다.

"배신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봐라, 나의 동생이여!"

그리고 그의 일격이 은빛 머리 남자에게 쇄도했다.



-*-




"…!"

멀리서 일어난 그 격돌을 느낀 듯 보랏빛 머리의 그 남자가 일순간 움찔했다. 그 격돌이 일어난 곳으로 눈을 돌린 그는 바로 그곳에서 아주 엄청난 '폭발'이 느껴지는 걸 멀리서 바라보고는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결국… 이렇게 되어 버렸군."

하지만 그렇게 페르시아 군의 별동대와 마케도니아의 별동대가 격돌하는 사이 알렉산더가 이끄는 우익군 대부분은 페르시아 군의 중앙열을 뚫고 다리우스가 있는 본진까지 뚫고 들어갔다. 이것이야말로 그 알렉산더가 원했던 상황이었다.

"… '망치와 모루' 전술이로군."

그렇게 중얼거리는 보랏빛 머리의 남자 뒤로 페르시아의 전차병이 전차를 매섭게 이끌고 달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그 상황을 모르는지 중얼거리듯 말했다.

"문제는 그 두 녀석인데… 설마 이 녀석들이 분위기에 취해 이 평원의 군사들을 다 죽일 정도로 격렬하게 싸우진 않겠지."

이젠 거의 다다른 전차병들은 보랏빛 머리의 남자의 등을 향해 창을 들어 던지려는 포즈를 취했다.
그 순간,

"그래… 그러면 곤란하지."

그 보랏빛 머리의 남자가 뒤로 몸을 돌리며 주먹을 내지르자,

"콰광!!!"
"…!!!"

말도 안되는 광경이 벌어졌다. 그 남자의 주먹의 충격파로 그 전차는 마치 거대한 대포라도 맞은 듯이, 아주 완전하게 그 자리에서 「찢겨 나가」버렸다. 마차도, 말도, 그리고 사람도… 마치 거대한 포탄이라도 뚫고 나간듯 완전히 찢겨 나가며 피분수를 흩뿌리면서 그 남자의 힘에 박살이 났다.

"곤란하고 말고."

그런 광경을 눈 하나 깜빡 안하며 그 보랏빛 머리의 남자는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도 이렇게 얌전하게 놀고 있는데 말이지."



-3-




지난 해의 이수스 전투에 이어 BC.331 10월 1일 소아시아의 가우가멜라 평원에서 벌어진 알렉산더 대왕과 다리우스 3세 황제의 대결은 완전한 마케도니아의 대승리였다.
그리고 그 전투에서 황급하게 도망친 다리우스는 그로부터 며칠 후 어느 한 강에서 신하들에 의해 배신당해 살해된 후 비참하게 땅바닥에 버려져 있었다. 비록 자신의 적이었지만 그래도 한 나라의 황제였던 다리우스에게 알렉산더 대왕은 깊은 조의를 표하며 그 시신을 공손히 거두고는 이 황제를 배신한 신하들을 반드시 찾으라는 엄명을 내리고 말머리를 돌렸다.

물론 알렉산더가 갈 곳은, 그리고 그의 옆에 있던 그 검은 머리의 남자가 가야 하는 곳은 한 곳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완전히 항복시킨 이 페르시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 모든 동방의 부가 모인 화려함과 쾌락의 도시, 바빌론으로….



-*-




"아주 잘해 주었네!"

마케도니아 군에 의해 약탈되고 불타는 페르시아의 수도 바빌론… 며칠 전 그 은빛 머리의 남자의 말대로 지금 이 도시는 자신들의 도시를 침략할 이방인들을 맞아들여야 할 운명이었다.
태고적부터 전쟁에서 진 자들이 겪어야 할 그 운명… 약탈, 살인, 방화, 강간… 그 광란의 밤 가운데 페르시아 궁전의 황제의 옥좌에 걸터 앉아있던 알렉산더는 주위의 소란스러운 광경 속에서 자신에게 걸어오고 있는 검은 머리결의 남자를 향해 반갑다는 듯이 손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그래, 수고했어. 일단 페르시아는 이제 우리들 손에 들어온 거야. 다 자네와 그 친구 덕이야!"

지금 이 자리에 없는 그 보랏빛 머리의 남자까지 같이 치하하는 알렉산더의 말에 검은 머리의 남자는 조용히 머리를 숙여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때 마침 한 예쁜 페르시아 궁녀를 어깨에 들쳐메고 어디론가 걸어가던 보랏빛 머리의 남자가 알렉산더와 검은 머리 남자를 발견하곤 반색을 표하며 다가왔다.

"여어~! 전하, 덕분에 오랫만에 여자 갈증을 해소할 수 있어서 좋은데요? 하하하."

지금 이곳의 분위기는 그러했다. 전쟁에서 승리자의 입장으로 이 화려함과 쾌락의 도시에 들어온 굶주린 흉폭한 병사들이 행하는 게 무엇이겠는가.
강간에 저항하는 궁녀들의 비명소리와 그런 여자의 볼을 손으로 후려치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병사들이 벌이는 강간과 난교의 현장… 하지만 그 세 명은 그 광경이 익숙한 듯했다.
게다가 보랏빛 머리의 남자는 방금 전까지 그런 분위기에 일조하고 왔으니…

"아아, 내가 일단 따로 다리우스의 아름다운 총희(寵姬)들은 특별히 건드리지 말고 따로 붙잡아 두라고 병사들에게 일러뒀어. 나중에 자네도 이 '세계의 왕'과 더불어서 마음껏 즐기게나."
"아, 역시 우리의 대왕 전하께선 생각이 깊으시다니까. 성은이 망극할 따름입니다, 전하."

싱글벙글하는 그 보랏빛 머리의 남자와는 달리 그 검은 머리결의 남자는 알렉산더를 향해 건조한 어조로 말했다.

"일단 저와 이 호색가 녀석이 여기 온 목적부터 해결하고 오겠습니다. 이만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아…? 아, 알았네, 그러게."

그 말에 이제서야 기억이 나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알렉산더에게 검은 머리의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는,

"으… 응? 엥?"

아직도 상황을 모르는 보랏빛 머리의 남자의 멱살을 잡고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 어디 간다는 거야?"
"… 그걸 찾으러 우리가 여기 온 게 아닌가?"

보랏빛 머리의 남자를 향해 차가운 눈빛으로 되묻는 그 검은 머리결의 남자의 눈빛에,

"… 아, 맞다."

그제서야 기억이 나는 듯 보랏빛 머리의 남자가 중얼거렸다. 그때 그는 마침 옆에 지나가던 병사에게,

"이 아가씨 자네가 데려가게."

어깨에 들쳐메고 있던 궁녀를 넘기고는 그 검은 머리결의 남자와 함께 궁궐 정원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끼이이…

오래된 듯 소리를 내며 열어젖혀진 거대한 문… 그 안에서 스며나오는 으스스한 한기를 뚫고 그 두 남자가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있군…."
"그 빌어먹을 놈이 딴 데로 빼돌렸으면 헛고생할 뻔했잖아?"

그들의 눈 앞에 한기의 수증기를 뚫고 드러나는 거대한 것은… 그들이 찾던 그것이었다.
주위의 거미줄같이 복잡한 전선과, 공중에 떠 있는 신비한 수정같은 제어 장치들… 옆에 가득히 방 안을 채우고 있는 돌로 만들어진 정체 불명의 큐브들…

그리고 그 가운데 엄청난 규모로 만들어진 거대한 크기의 석관(石棺)…

마치 무언가 아주 거대한 것을 '가두기 위해' 만들어진 듯한 그 엄청난 물건을 앞에 두고 그 둘은 감개무량한 듯이 말햇다.

"드디어 손에 넣었어. 『영혼의 새장』… 도메스 포라다(Domes Porada)를…."
"이것이 이 페르시아의 근원이었던 바빌로니아의 왕 네부카드네자르의 유산(遺産)인가…."

감회에 젖은 듯한 보랏빛 머리와 검은 머리결의 남자들의 한 마디…
그 영혼의 새장을 바라보며 보랏빛 머리의 남자가 물음을 던졌다.

"우리가 이걸 찾는다고 해서… 과연 이게 쓸모가 있을까?"
"분명 언젠가는 이게 필요할 거야."

검은 머리결의 남자가 확신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언젠가는 반드시 그런 날이 올 테니까… 언젠가 이 모든 세상이 악한 자 안에 처하게 될 그 날, 이 새장으로 그 자를 가둘 그 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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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스 가든 - 이글루 소설가 동맹
by 요아킴 | 2008/03/03 02:08 | [정식소설] 라이드 위드 더 데블 | 트랙백 | 덧글(3) |
2008년 01월 13일
Ride With The Devil - ▶ Chapter 7 - VIII. La Force 不可抗力 (11)



소설을 보시겠어요?





-10-



- 같은 시각, 2006년 7월 22일
미국 뉴욕시 동부 46번가.



"탕!"

총 소리와 함께 마지막 인영이 쓰러지자 조슈아가 털썩 주저 앉았다.
그리고 말 없이 손에 든 총만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등 뒤로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치신 건가요, 주인님?"
"… 글쎄, 이제 슬슬 그러려고 하는 것 같아, 아스."

나지막히 한숨을 쉬며 조슈아는 말을 이었다.

"얼마나 내가 손에 피를 묻히며 살아 왔을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는군."
"인류가 생긴 이래로 이 지구 상에 전쟁이 없었던 시간은 단 50년 뿐… 적어도 기원전 3천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계산한다고 해도, 적어도 2천만 명 정도가 주인님 손에 죽었을 겁니다… 아마 그보다 더 많을 수도 있겠죠."
"그렇게나 많이 말인가…."
"다 세시지 못하실 정도로 많은 건 확실합니다, 주인님."

그 여인이 그렇게 말하자 약간 풀이 죽은 듯 조슈아의 어깨가 움츠러 들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그 여인, 아스는 조심스레 조슈아의 등 뒤에서 그를 껴안았다.
그와 함께 조슈아는 기모노 상의 밑에 감추어진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자신의 등을 지긋이 누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기모노의 커다란 소매가 부드럽게 조슈아의 얼굴을 스치면서 가녀린 팔이 조슈아의 목을 감쌌다.

"…아스?"
"후회하시는 건가요, 나의 주인님이시여?"
"…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군, 아스."

어느 새 발 밑으로 질척해질 정도로 흥건하게 모인 피웅덩이… 그 피의 연못에 발을 걸치고 있는 채 조슈아가 말했다.

"나는 이제까지 '그들'에게 대적해 왔다. 이 세상 '그 자체'가 된 그들에게…. 그렇다면 내가 '그들'을 멸망시킨다는 건 결국은 내가 이 세계 자체를 멸망시켜야 한다는 걸까. 그 생각을 하면 난 아직도 혼란이 와."
"이 세계는 본디 그들의 것이 아니라 바로 주인님의 것이었습니다. '그분'께서 이 세상을 주인님의 권세에 맡기신다고 선언하셨으니까요."
"……."
"즉, 주인님께서 하시는 일은 바로 '세계의 왕'으로서의 권리를 찾는 것, 그리고 악한 자들을 단죄하는 심판관이 되시는 것…. 이것은 그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코토와리(理 : 세상의 이치 혹은 진리)입니다."
"세상의 진리라…"

그녀의 그 말을 듣고 조슈아가 답했다.

"아스, 내가 보기엔 그런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
"…?!"
"사실 그런 게 있다손 치더라도 그건 아마 순진한 멍청이를 이용하려고 꼬드기기 위한 미끼에 불과하겠지…. 그런 허망한 것에 집착해 발버둥치게 만들려고 말이야."
"… 확실히 예전보다 더욱 더 시니컬해지셨군요. 나의 주인님."

조슈아의 그런 말에 아스는 약간 마음이 아팠다. 평소 자신이 보아 오고, 그렇게 바라보고 있을 때마다 두근거리며 사랑에 빠졌던 자신의 주인님의 모습이 지금은 쓸쓸한데다 메말라 보이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조슈아가 안됬다고 느꼈는지 아스는 그 아름다운 손을 들어 조슈아의 얼굴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런 그녀의 섬세한 손길을 느낀 듯 잠시 눈을 감은 조슈아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따뜻하구나, 너의 손이…."
"주인님…."
"아스, 너도 한때는 연아 누님 같은 여인이었었지. '어머니'같은 자애로운 이미지를 가졌던 그런 아름다운 여인 말이야…."
"하지만 그분과는 다르게 전 '창녀'였었죠."

그녀의 그 대답에 조슈아는 고개를 돌려서는, 자신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아스의 그 보랏빛 눈동자를 마주보았다.
검은 긴 머리결을 일본식의 긴 비녀로 쪽지어 포니테일로 늘어뜰인 요염한 얼굴의 아스… 간절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아름다운 그녀를 바라보며 조슈아는 위로하듯이 따뜻한 말 한 마디로 답했다.

"상관없어, 아스. 넌 충분히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나의 여신이니까…."

조슈아의 그런 말에 순간 두근거린 듯 아스의 얼굴에 홍조가 번졌다.
그녀는 자신의 주인이 건네준 그 따뜻한 말 한 마디에 감동한 듯, 환하게 미소를 짓고는 조슈아의 목 뒤에 사랑스럽게 키스를 해주며 말했다.

"주인님께 이런 사랑스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제가 주인님의 길을 따른 게 전혀 후회가 되지 않는답니다, 후후. 그게 어떤 길이든 간에요."
"분명 힘든 길일테지…."
"염려마세요. 애초부터 이미 전 주인님과 힘든 길을 함께 걸어왔으니까요."
"그래, '그때'부터였지."

그녀의 말에 조슈아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아내'인 미즈호와 꼭 닮은 모습을 한 채 지금도 자신을 유혹하는 그녀이지만, 조슈아에겐 원래 아스는 단순한 메이드나 비서, 부하가 아닌… 자신과 같은 길을 걷는 충직한 '동지'이기도 했다.

"나의 오만으로 인해, 나는 거짓말로 너와 나의 '백성'들을 이 길로 끌어들였지. 이제와선 그건 지금 어쩔 수 없는 나의 원죄… 그래, 그렇다면 미안하지만 한번만 더 나의 거짓말에 속아다오, 아스. 그리고 나와 같이 예정된 그 '파멸'의 끝까지 한 번 가 보자."
"주인님의 명령이시라면."

슈트를 펄럭이며 일어서는 조슈아를 따라 아스도 몸을 일으켰다.
그들 앞에 보이는 시체들… 그 피바다 가운데서 조슈아가 말했다.

"이제 여기는 정리가 된 것 같은데…."
"그런데 잔챙이들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건…."
"… 날 여기로 꾀어낸 함정이란 건가, 아스?"
"네, 하지만 주인님을 죽이기 위한 함정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결국 그건가."

그렇게 말하며 앞으로 걸어간 조슈아는 앞에 보이는 문을 발로 걷어찼다. 그리고,

"왔군, 그들이…."

거친 소리를 내며 벌컥 열린 문 뒤로 보이는 건, 커다란 광장에 모여 이쪽으로 총구를 겨누고 있는 군부대 병사들의 모습이었다.
한밤 중에도 빛을 발하고 있는 불야성인 뉴욕의 번화가 가운데에서 그렇게 많은 군인들이 모여 있는 모습은 충분히 긴장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FEMA(Federal Emergency Management Agency : 연방 긴급사태 관리국)이라… 이 녀석들까지 동원했군."
"네, 단지 주인님에게 말을 전달하기 위해서."
"고작 그걸 위해서?"

그렇게 조슈아가 되묻는 것과 함께 한 남자가 광장의 군인들 가운데서 나오며 말했다.

"네, 좀 고전적인 방법인데다, 여러 명을 희생시켜야 하는 방법이지만 효과는 확실하거든요. 적어도 '전하'에게 말 한 마디라도 전하기 위해서는 말이죠."
"자네들답군."

그렇게 대답하며 조슈아가 그 남자를 향해 차갑게 말을 꺼냈다.

"그런데… 날 전하라고 부르는군, 제군."
"네, 세계의 왕(Ho tou kosmou archon)이시여…. 이젠 당신의 왕국은 저희들 손으로 넘어왔지만 말입니다."
"……."

그렇게 말하며 그 남자는 정중하게 조슈아에게 인사를 했다.

"저는 당신의 왕국인 이 세계를 다스리는 아레오파구스(Areopagus)에서 보낸 대리자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 남자는 말쑥하게 차려입은 양복 차림의 호남형 인물이었다. 조슈아에게 대하는 태도도 정중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그 부류 특유의 거만함이 묻어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다만 특징이라고 하면 그의 양손의 손등에 새겨진 영어 단어였다. 그의 오른손에는 사랑(Love), 왼손에는 증오(Hate)라는 단어를 새겨져 있었다.

"…? …아하."

그걸 말없이 바라보는 조슈아의 시선을 알아챘는지 그 남자가 말했다.

"이 손을 보고 계시군요. 이 오른손과 왼손에 대한 짧은 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
"자네, 옛날 클래식 영화 매니아로군. 그것도 매니악한 쪽으로…."

조슈아가 픽 웃으며 거절하자 그 남자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아쉽군요. 별 생각 없으신 것 같으니. 그렇다면 역시 원래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그 남자는 싱긋 웃으며 조슈아에게 다시 정중하게 물었다.

"아레오파구스의 회의에서는 전하와 전하의 동료들에게 이 뜻을 전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저희는 전하께서 저희들과 함께 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자네들과 동류가 되란 건가…."
"나름대로 저희들도 전하의 위대함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이런 제안을 드리는 겁니다."
"……."
"지금 이대로 전하께서 그 길로 가신다면 시트라 아크라(Sitra Achra : 히브리 어로 '반대편에 선 자')이자 세계의 '적'이 되실 겁니다. 아니, 이미 그렇게 되셨다고 해야겠죠. 전하의 동료들도 마찬가지로 말이죠."

그 남자는 지금 이 순간 맥스와 레오에게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지 다 아는 듯이, 아니… 자기 자신이 마치 그렇게 그들 둘에게 일이 일어나도록 만든 신이라도 되는 양 약간 거만한 태도로 말했다.

"맥스 님은 교황청과 가톨릭의 적이 되셨습니다. 레오 님은 자신이 속한 아발론 뿐만이 아니라 유럽 연합의 적이 되었습니다. 전하야 뭐, 원래부터 최강최악의 '세계의 적 Contra Mundi' 이었구요. 전하의 진짜 이름 중에 '세계의 적'이란 이름도 있으니 알 만하죠."
"……."

여전히 조슈아는 그의 말에 대꾸를 하지 않는 채 계속 듣고 있었다.

"전하와 전하의 동료분들과는 달리 우리들은 다릅니다. 저희들은 이 인간들의 세계 그 자체죠. 또한 그 동안 진보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먼 옛날 막대기로 붙을 붙인 이래 인류는 지금 핵무기까지 만들어냈습니다. 그만큼 인류와 저희들은 진화를 거듭해 왔다는 거죠. 시간의 흐름에서 떨어져 정체된 채 이 세계 위에서 떠돌아 다녔을 뿐인 전하와는 달리 말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전하께서 이 세계와 대적할 수 있으실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진보… 진화라…."
"만일 저희와 함께 하신다면 전하와 전하의 동료분들에게 합당한 대접을 해드리겠습니다. 아레오파구스가 위임한 특사의 권위로서 맹세하죠."
"합당한 대접?"
"네, 한때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전하께서도 저희와 같은 입장이시죠.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신을 부정할 수 있는 자… 「데우스 케데르(Deus Caedere : 신살자 神殺者)」… 그에 맞는 대우와 경의를 바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 남자는 사랑(Love)이란 문자가 새겨진 오른손을 내밀어 조슈아에게 악수를 청하였다.
그리고 한마디 더 덧붙였다.

"저희들의 제안을 받아들이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전하와 전하의 동료분들에게는 더 이상의 선택의 자유가 없으니까요."
"…! … 자유가 없다?"

그 말이 귀에 거슬렸던 듯 조슈아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리고 조슈아는 그 남자를 노려보며 다짐을 하듯이 말을 꺼냈다.

"애초부터 나는 이 길을 선택할 자유를 가지고 있었고 나의 선택에 따라 이 아나테마(Anathema: 저주)를 떠맡은 거다. 네놈이 날더러 선택의 자유가 없다고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에 잿더미로 변하고 인간이 소금기둥으로 변했던 그 때부터… 인류과 그대들이 진보를 해 왔다고 해도, 결국은 그건 인간의 '한계' 안에서의 진보일 뿐이지."
"그렇다면…."
"그런데 대체 무슨 베짱으로 감히 나와 그 녀석들에게 협박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 그래."
"지금 그렇게 말씀하신다는 건, 거절하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아니지."

조슈아는 픽 웃으며 그의 말을 정정해주었다.

"선전 포고라고 해두면 되겠지. 말하는 쪽은 이쪽이고, 인류와 이 세계 전체는 인질이고, 듣는 쪽은 그대들이야."
"멋지군요."

그렇게 감상을 표하며 그 남자는 증오(Hate)가 새겨진 왼손을 들어 안경을 추켜세웠다.

"하긴 한때는 그 '지존자 Elyon'에게도 반역했던 당신이었는데 이런 경고가 통할 리가 없겠군요."
"유감이로군."
"그렇다면 남는 방법은 하나군요. 전하께서 저희와 함께 하지 못하시겠다면 우리 '세계의 지배자'들에게 사냥을 당하셔야겠군요. 그게 전하께서 택하실 수 있는 길이죠."
"아까 그런 협박이 안 통한다고 말했을 텐데."

그렇게 말하며 조슈아는 슈트를 펄럭이며 그 남자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이제 밤이 오고 있어. 내가 바라진 않았지만 '자네들'이 자초해서 불러낸 그 밤이 말야."

조슈아의 슈트가 펄럭이며 마치 악마의 날개같이 검은 그림자를 공중으로 흩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슈트 뒤로 어깨까지 드러낸 기모노 차림의 아스가 공중에 떠 있는 채, 일본도 쿠모기리를 들고 조슈아의 뒤를 호위하고 있었다.
이제 조슈아의 오른손 부근에서 공간을 뚫고 솟아난 조선식의 환도… 조슈아는 그 환도의 손잡이 쪽으로 손을 옮기며 말했다.

"그래,… 사냥꾼들의 밤이 시작되었어."


-*-



조슈아가 그 말을 꺼내자,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 앞에 서 있던 맥스가 그 순간 그와 동시에 아가사 수녀에게 씩 웃으며 말했다.
옆으로 손을 뻗혀 어두운 '공간' 안에서 무언가 거대한 '십자가'를 꺼내며…

"그래, 환영하지. 그대가…"


-*-



그리고 그와 동시에 런던의 대영 박물관 앞에 서 있는 레오도 중얼거렸다.
'공간' 안에서 소환한 수많은 들을 등 뒤에 마치 '날개'와 같은 모습으로 띄운 채… 집게 손가락을 세워 앞의 그들을 가리키며….

"그대들이 이 오만한 사냥꾼들의…"


-*-



그리고 뉴욕 시내 한가운데에서… 조슈아가 환도의 손잡이를 움켜쥐며 중얼거렸다.

"… 잔인한 밤에 초대된 걸 말이야."








이글루스 가든 - 이글루 소설가 동맹
by 요아킴 | 2008/01/13 13:44 | [정식소설] 라이드 위드 더 데블 | 트랙백 | 덧글(3) |
2007년 12월 26일
Ride With The Devil - ▶ Chapter 7 - VIII. La Force 不可抗力 (10)



소설을 보시겠어요?





-9-





싸움의 정수(精髓)란 지극히 간단하다.
적의 위치를 파악할 것, 적을 가능한 한 빨리 찾아낼 것. 그리고 적을 가능한 한 강력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공격할 것.


- 율리시즈 S. 그랜트 Ulysses Simpson Grant (1822 ~ 1885)




- 1945년 5월 13일.
영국 런던 템즈 강, 사우스 뱅크(South Bank) 부두.



아직은 이른 런던의 아침은 안개가 가득 낀 하늘로 시작되었다. 이 도시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아침 안개는 오늘도 부옇게 끼여서 앞을 내다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이런 날이면 항구의 부두 책임자인 애슐리는 특히 신경이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오늘은 더욱 더 그랬다. 그렇지 않아도 마침 오늘 중요한 물품을 실은 배 하나가 이곳 부두에 정박을 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내가 여기 나와 있고 말이지'

안개가 부옇게 끼인 아침 공기를 마시며 애슐리는 부둣가를 걸어 자신이 기다리고 있는 배가 올 곳으로 가고 있었다. 입으로는 온갖 불평의 말을 내뱉으며 투덜거리면서 말이다.

'대체 뭐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길래 직접 가서 인수인계를 하라는 건지, 나 원….'

하지만 상부에서 직접 내려온 지시인 이상, 그의 지금 처지로서는 평소 하던 대로 사무실에서 뻗대고 있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렇게 투덜투덜대면서 걸어가는 그의 눈 앞에는, 이제 안개 속에서 다가오는 군용 화물선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저 배로군."

미리 언급받은 대로 상당히 큰 배였다. 하긴 그래야 되지 않을까... 라고 애슐리는 생각했다.
불과 몇 달 전, 나치의 수장인 미치광이 히틀러가 자살하고 독일 제 3제국이 멸망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것이다. 이제 노르망디를 통해 유럽 대륙으로 건너갔던 우리 대영 제국의 군대도 자랑스럽게 이 황도 런던으로 돌아와야 하지 않겠는가…
그랬다. 이제 나치의 독일 제 3제국은 사라졌다. 그러나 대영 제국은 아직도 남아있다. 군수품도 함께.
그 군수품을 영국으로 다시 가져오던 배의 행렬도 이젠 오늘로서 막바지에 이르렀던 것이었다.

'하지만 저건 꽤… 큰 거 같은데?'

그런데 오늘 이 항구에 도착한 배는 평소 자신이 보았던 크기의 배는 아니었다.
대체 얼마나 많이 대륙에 군수품이 남아있기에 이렇게 큰 배에 실어온단 말인가.

"애슐리 씨?"

그 배를 바라보며 약간 놀란 듯 멍하게 바라보고 있던 그에게 한 남자가 다가왔다.

"네. 그쪽은?"
"이 배와 배 안의 선적물의 운송을 맡은 맥밀런 소령입니다. 제국 해군 소속이죠."
"아, 예의 그 인수인계 때문이시죠?"
"네. 여기 이 서류를."

애슐리의 물음에 맥밀런 소령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정중하게 그에게 건네주었다.

"군 쪽에서 화물을 여기로 인계해서 좀 의아해 하셨겠습니다."
"아뇨. 뭐, 저도 시키는 대로 하는 거니까 의문 없이 하는 거죠."

맥밀런의 물음에 애슐리는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대답하며 서류에 사인을 했다. 그런 그에게 맥밀런이 말을 붙였다.

"이제 전쟁도 끝났고, 이제 이 배들이 마지막입니다."
"아직 일본이 남았지만 뭐 끝난 거겠죠. 그런데… 이건 뭡니까?"

서류에 사인을 하고 잠시 내용을 확인하고 있던 애슐리는 그 가운데 뭔가 이상한 걸 발견한 듯 말했다.
그 물음에 서류 위로 시선을 옮긴 맥밀런 소령은,

"아, 그거 말입니까?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연합군 사령부 직속 지시로 여기에 싣고 온 거라서 말이죠."
"이게 '그 사람'들이 여기로 싣고 오라고 한 바로 그 '짐'인가 보군요. 그런데 이건… '새장'… 이라구요?"

서류에 적힌 'The Cage'라는 문자가 뭔가 모르게 수상했다. 그 단어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일단 애슐리는 사인된 서류를 맥밀런에게 돌려주고는…

"상부에서 말하신 분들이시죠? 지금 도착하셨군요. 지금 막 인수인계를 끝냈습니다."
"아아, 좀 늦었소. 미안하오."

서류를 받아들고 배 쪽으로 돌아가는 맥밀런 소령을 뒤로 하고 돌아선 애슐리는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남자에게 시선을 던졌다. 미리 언질을 받아서인지 금방 애슐리가 알아본 몇몇 의문의 양복 남자들…
그들과 같이 서 있는 전형적인 영국 신사 복장을 한 남자가 짚고 서 있는 지팡이를 들어서는 배를 가리키며 옆에 서 있던 그 양복 남자들을 향해 말했다.

"드디어 '새장'이 도착했다. 지시한 대로 준비를 서두르도록."

그 명령에 그 신사의 주위에 서 있던 남자들이 고개를 숙이며 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배를 향해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것과 함께 애슐리가 그 영국 신사에게 말을 꺼냈다.

"저, 그런데…."
"음?"

애슐리는 그 신사에게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왕실' 쪽에서 특별히 지시를 내려서 오신 건 알고 있습니다만… 대체 '저게' 뭐길래 이렇게까지 하는 건가요?"
"저거 말인가?"

안개 속에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그 영국 신사는 소리내지 않고 나직히 웃고는 말했다.

"미안하네만 제국의 국가 기밀이라서 말이네. 자네가 알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지."
"뭐, 높으신 양반들이 하는 일이니까 더 묻지는 않겠습니다. 그런데 대영 박물관에 싣고 갈 정도라면 유물 비슷한 것이라도 되는 것 같군요."
"유물이라고 해야 하나…그렇게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닐 듯하군. 아, 그런데 애슐리 군."

그렇게 말하며 그 신사는 앞으로 발걸음을 떼었다. 그런데 그 신사는 순간 눈 앞의 안개 속에서 모습이 사라졌다가,

"…!?"

어느새 애슐리의 '바로 옆에서' 나타나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옛날에 영국의 한 왕이 이렇게 말했지."

마치 귀신에라도 홀린 것같아 놀란 애슐리의 어깨를 툭툭 쳐주며, 그 신사는 여전히 안개 속으로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말했다.

" '제국은 각자의 신민들이 자신의 의무를 다하길 기대하고 있다'라고. 자네도 그걸 기억해 두도록."

그렇게 말하고 그 신사는 이제 배 안으로 들어갔다. 배 위에 올라가 사람들이 가르쳐준 대로 화물칸으로 내려간 그는 거기서 뭔가를 발견했는지 반색하는 얼굴을 했다. 자신이 이제까지 기다려 온 그것이 온 것이다.

"「영혼의 새장」…"

…그랬다. 드디어 '그게' 여기로 온 것이었다.

"십자군 전쟁 이후로 오랫만에 보는 거로군. 구시대의 유물이여…."

그의 눈 앞에 놓인 커다란 규모의 '그것'… 네부카드네자르의 유산인 그것을 바라보며 그 신사, 알타반이 중얼거렸다.

"이젠 이것도 시대에 뒤떨어진 '유물'이자 '무기'일지니, 더 이상 우리의 길을 막지 못할 것이다. 그래, …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영원히…."



-*-



-- 2006년 7월 22일
영국 런던 대영 박물관(British Museum) 부속 도서관.



"그래, 어떻게 필요한 건 찾으셨나요?"
"그게, 생각처럼 잘 되지는 않는 듯하군요."

은발의 사나이는 그렇게 대답하며 푸른 눈동자로 서류를 훑어보고 있었다. 그 푸른 눈동자의 남자, 레오폴트는 책상 위에 걸터 앉아 있는 채 손에 들고 있는 여러 서류를 뒤적거리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고 있는 듯했다.
그에게 아까전 말을 걸었던 그 아가씨가 다시 물었다.

"무엇을 찾으시는 건데 그러시죠?"
"필요한 게 있어서 이 대영 박물관에 반입된 문화재 및 유물에 대한 리스트를 검토하고 있는 중인데요. 그런데 그 리스트 중에서 딱 그것이 없군요."
"뭐가 없다는 거죠?"

그녀의 되물음에 잠시 생각을 한 레오는 곧 입을 열어 대답했다.

"1945년 5월 한달 동안, 그러니까 나치 독일의 패망 후의 반입 물품 목록… 그 부분만이 삭제되어 있군요."
"날짜도 그렇고…이상하네요."

그녀의 반응에 레오가 부가 설명을 했다.

"그것도 출발지가 그곳인 물품들의 리스트가 없군요.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이라뇨?"
"독일의 수도, 베를린이요."
"…베를린이라구요?"
"네."

레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것도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의 그 베를린이에요."
"베를린이라…."

동양인 계통으로 짐작되는 검은 머리결을 무의식적으로 쓸어넘기며, 굵은 검은테 안경을 낀 미모의 이 사서 아가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이 박물관에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문화재나 유물은 항상 리스트를 만들어 기록에 남겨놓아야 해요. 그게 원칙이니까요. 만일 그 리스트에 찾고 있는 기록이 없으시다면 가능성은 2가지군요. 여기에 그 물건이 애초부터 들어오지 않았거나…"
"누군가가 물품이 들어온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거나… 그 둘 중 하나겠군요."
"그건 그렇지만… 그렇다면 대체 누가 무엇 때문에 그랬다는 거죠? 그리고 대체 '무엇'을 숨겼다는 걸까요?"

레오의 말에 그 아가씨는 호기심이 동한 듯 질문을 했다. 그런 그녀가 레오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그렇게 물어보고 있는 뒤쪽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하지만 당신은 그 이름을 알 필요가 없어요, 아가씨."

필시 지금 여기에 있는 레오와 그 아가씨의 목소리가 아닌 제 3자의 목소리일 터였다. 그녀와 레오가 동시에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 곳에는 한 남자가 뒤돌아 선 채 책상에 기대 앉아 있다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금발의 머리결 밑으로 호루스의 눈 문양을 새긴 안대를 하고 있는 그 남자는 씩 미소를 짓고는, 손에 들고 있는 『파우스트』를 덮으며 말했다.

"아아, 그래. 느낌이 전부야. 이름은 그저 소리요, 연기라구. 그레첸(Gretchen)."

마치 연극 대사를 읊는 어조로 능청스럽게 말하는 그 남자에게 레오 옆의 아가씨는 쏘아 붙이듯이 말했다.

"제 이름은 캐더린 리드맨이에요. 뮤지컬이라도 하듯이 그렇게 부르진 말아주세요."
"아, 실례했군요. 미스 리드맨. 그냥 파우스트에 나오는 대사를 읊어본 건데, 하하하."

약간 샐쭉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캐더린에게 그렇게 웃으며 얼버무리는 그 남자… 이번에는 레오가 말을 건넸다. 그가 건넨 말은 내용 자체는 반 정도는 농담이라도 하는 듯했지만 말투 자체는 상당히 냉랭했다.

"그래, 이제 그레첸에게 미움을 받았으니 다음은 헬레나를 손에 넣으러 갈 건가, 파우스트 박사?"
"우리의 '헬레나'가 이미 '대위님'의 것이 되었는데 뭐하러 그런 헛짓을 합니까. 이상향 건설 단계로 바로 건너뛸 생각입니다, '지그프리드' 대위님."

엠블라를 '헬레나'로 비유하는 데다가 레오를 '지크'로 부르는 이 남자… 분명 '아발론'과 관련있는 자였다.
이 남자의 정체를 이미 잘 알고 있는 듯 레오는 말없이 한참 고민을 하는 듯하더니 캐더린을 향해 정중히 말했다.

"리드맨 양. 제가 저 친구랑 할 이야기가 있는데 잠시 자리를."
"아…."

아마 단순히 이야기로만 끝날 상황이 아니라는 건 그녀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레오의 그 말 바깥에 있는 뜻을 이해한 그녀는 조용히 자리를 피해주었다.

"……."

이제 레오와 그 남자 둘만 도서관 안에 남자, 그제서야 레오는 그 남자를 향해 독설조로 말을 꺼내었다.

"그래, 그 빌어먹을 이상향 '아발론'에서 온 거냐, 란돌프?"
"네, 지금도 삽질하고 계시는 우리의 드래곤 슬레이어, 레오 대위님을 도와주기 위해서 왔죠."
"삽질이라고?"

눈매가 올라가며 레오가 되물어보자 란돌프는 안대에 가려지지 않은 나머지 한쪽 눈으로 웃으며 말했다.

"네, 삽질이고 말고요. 지금 여기서 대위님이 찾으셔봤자 소용이 없어요. 그 '새장'이라면 그들이 이런 박물관에 둘 리가 없잖습니까?"

사실 레오는 여기에 분명히 새장에 대한 단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중동에서 소울 케이지가 없어졌다. 분명 그 '새장'은 중동에서 제 3제국의 수도 베를린으로 이송되었을 것이라고 레오는 추측했다. 아마 롬멜 장군이 수도에서 보내온 밀명에 따라 중동에서 토브룩 공방전을 지휘하며 따로 편성한 부대로 그 새장을 빼돌리는 임무를 수행했을 것이다.

'분명 총통은, 그리고 '그 녀석'은 전쟁 후를 대비해서 베를린으로 그 새장을 옮겼을 거야. 하지만 이미 늦었겠지.'

세간의 이야기로는 베를린이 연합군 손에 떨어지던 날, 미군이 나치의 비밀 창고에서 그 유명한 '롱기누스의 창'을 압수한 그 때와 동시에 히틀러가 자살했다고 한다. 그 후 미군은 원래 있던 오스트리아 국립 박물관에 그 롱기누스의 창을 반환했다. 하지만 미군이 그 날 롱기누스의 창을 베를린에서 압수한 때, 대영 제국의 군대는 그 곳, 베를린에서 그 '새장'을 발견했었을 것이다.
비록 증거는 없지만 레오는 일말의 가능성을 찾기 위해 여기로 온 것이었다. 그런데 그의 눈앞에 있는 란돌프라는 녀석은 그가 삽질을 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은 즉 그 '새장'이…."
"아마도 영국 황실의 권한 하에 있겠죠."
"확실히 그건 그렇겠군. 알려줘서 고맙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레오가 일어서려 했다. 그와 함께 레오와 란돌프의 손이 동시에 움직였다.
순간적으로 란돌프의 손에서 날아간 '무언가'가 바로 레오의 머리까지 날아갔다.

"…!"

어느새 이마까지 날아온 란돌프의 다트… 그 짧은 거리에서 바로 이마를 꿰뚫기 전에 란돌프의 다트를 잡아챈 레오가 말했다.

"란돌프 루 라바다… '긴 팔의 루' 란돌프. 아직까지 그 손버릇을 못 고치겠다면 아예 손목을 분질러 주지."
"아니 뭐 어쩌시려고 일어나신 거에요? 잠시 이야기나 들어보려고 대위님을 멈추게 한 거에요."
"그야 물론 물어보러 가려고."
"물어본다고요? 누구에게요? 설마 버킹엄 궁전에라도 쳐들어가서 직접 영국 여왕에게 물어보기라고 할 생각인 겁니까?"

그 말에 레오가 잠시 생각해 보는 듯하더니 대꾸했다.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군 그래."

그 대답에 란돌프가 기가 차다는 듯이 말했다.

"적어도 여왕 폐하와 알현 약속이라도 하고 가셔야 모양새가 날 텐데요. 그렇게 막무가내로 쳐들어 가시려고요? 아예 영연방과 프리메이슨에게 대놓고 선전 포고라도 하시려는 겁니까?"
"필요하다면."
"과연이라고 해드릴까요. 고작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힘과 권력 '따위'는 아예 안중에도 없는 당신의 그 대범함, 지금도 여전하군요."

여전히 레오의 건재함을 확인해서 기쁘다는 듯, 박수를 가볍게 친 란돌프… 이제 그는 미소를 씨익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가시기 전에 간단하게 몸이라도 한번 풀어보시죠. 어때요?"
"뭐, 나쁘진 않겠군. 오랫만에 한번 네놈의 싸움을 보자구. 네 녀석이 '긴 팔의 루'라고 불리는…."

그렇게 말하며 레오는 앞에 놓인 책상에 발을 올려놓고 말했다.

"…진짜 이유인 그 싸움을 말이지!"

그 말과 함께 레오는 앞으로 그 책생을 걷어찼다. 그와 동시에 란돌프의 다트가 레오에게 향하며, 그가 앞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이동의 평범한 의미와는 다른 형태의 움직임이었다.
란돌프는 바로 자신이 기대어 있던 그 책상을 통과해서 앞으로 이동한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통과했다기 보다는 아예 공간을 이동한 것이라고 할까. 그렇게 그는 순간적으로 공간을 '도약'(Jump)해서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을 빼들었다. 그리고 날아가던 다트가 박힌 채 공중에 떠 있던 책상을 두 동강 내며 자신에게 향하는 레오의 칼날을 맞받아쳤다.
도서관에 칼날의 금속음이 울리는 그 짧은 찰나의 순간… 일본도 코카라스마루로 란돌프와 칼을 맞대며 레오가 말을 꺼냈다.

"역시 그 도약(Jmup)… 그게 네 녀석의 '긴 팔'이었지."
"저의 긴 팔이 닿지 못하는 곳은 없죠. 아직까지 기억해 주시는군요, 대위님."

그리고 두 동강이 난 채 공중에 떠 있던 책상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과 함께, 그들 둘은 다시 움직였다. 아니, '사라졌다'.
마하의 스피드로 이동하는 여파로 근처에 충격파를 일으키는 레오… 그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서가의 책들이 분쇄되며 공중으로 조각이 날아올랐다.
도서관의 문이 부서지며 유물 전시실로 전장을 옮긴 둘은 여전히 계속 검을 겨루고 있었다.
여유있게 '도약'을 하며 레오에게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고 있는 란돌프는, 움직이는 충격파로 이젠 전시실에 있는 대영 박물관의 유물들을 부수고 있는 레오를 향해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대영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이 인류의 문화 유산이라고 들었는데. 대위님은 이걸 다 부수시기라도 할 생각이십니까?"
"어차피 영국놈들이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강도짓하며 모아온 것들일 뿐이야. 이딴 게 뭐가 중요하다고…."
"영국의 자존심인 대영 박물관을 마치 동네 전당포 쯤으로 취급하시는군요, 대위님!"

그와 함께 아래 층으로 내려간 레오를 내려다 보는 란돌프는 2층 난간에 손을 대고 슬쩍 뛰어오르는 행동을 보였다. 그와 함께 그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과 함께 바로 레오의 눈 앞에 '점프'해서 나타난 란돌프는 다시 레오와 검을 맞댔다.
그리고 다시 검격이 오갔다.
순간이동을 하며 레오의 옆, 위, 뒤에서 칼을 휘두르는 란돌프의 공격에도 레오는 칼로 맞서며 흔들림 없이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 와중 틈을 발견하고는 바로 란돌프에게 발길질을 날리는 레오… 미쳐 피하지 못한 란돌프는 그 발차기를 맞고 적어도 족히 수십 미터나 공중으로 미끄러지듯 날아갔다.

"콰당!!"

란돌프가 날아가며 몸을 부딪힌 것 때문에 대영 박물관의 현관문이 박살났다.
그렇게 열린 문으로 레오가 바라본 런던의 하늘은 어둑어둑한 밤 하늘… 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이 비추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왔군."

대영 박물관의 소동 때문에 출동한 영국 특수 테러 진압부대인 SAS(Special Air Service) 부대들이 박물관 계단 밑에 포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경찰이 아니라 영국 특수 부대들이 출동한 상황이라면, 분명 레오 자신이 여기 있다는 걸 누군가가 '알았다'라는 뜻이리라.

"여왕 폐하에게 따로 알현 약속을 하실 필요는 없으시겠군요, 대위님. 뭐 저렇게 미리 알아채고 환영 인파까지 보내주신 걸 보니."

바닥에 쓰러졌던 란돌프가 일어서선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면서 말했다.

"일단 몸은 풀었으니 한번 제대로 싸워보고 싶습니다, 대위님. 그래서 말인데 제가 따로 장소를 하나 정할까 하는데요."
"장소?"
"레오님도 잊으실 리는 없으실 텐데… 빌어먹을 『백정(Butcher)』 아서 T. 해리스… 기억하고 계십니까?"

레오가 그 이름을 잊을 리가 없었다.
한때 엠블라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었던 그 참사… 단 1시간만에 20만 명의 시민들을 열화소이탄으로 태워 학살한 드레스덴 폭격… 그 폭격을 지시했던 장본인이자 전형적인 학살광이었던 영국 공군 총사령관의 이름을 레오 그가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 빌어먹을 새끼가 뭐 어쨌단 거냐?"
"우리의 영광스런 영국 여왕 폐하께서 1992년에 차링크로스 역 앞 라운더부트 광장에 그 백정 녀석의 동상을 세워 주셨습니다. 어떻습니까, 지크 대위님?"
"동상?"
"네, 멋지지 않습니까? 참회와 반성이란 걸 몰라요, 여기 영국 촌놈들은. 여전히 오만하고 비열한 놈들이죠, 우리 나치와 다를 바가 없다니까요."
"……."
"그래서 영국에 온 기념 삼아 그 빌어먹을 새끼의 동상을 부수고 제대로 한번 대위님과 붙어 보고 싶습니다. 그럼 거기서 기다리고 있죠."

그리고 그는 다시 '점프'를 해서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하지만 란돌프의 아까 전 말에 다시 드레스덴의 그 사건이 생각났는지 레오는 그의 도전에 가타부타 말도 없이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 아직도 인류는 자신의 죄를 반성하고 있지 않는 것인가.'

수없이 많은 자들을 학살하고 범죄를 저질렀어도 승리와 정의의 이름을 내세우면 영웅이 된다…
레오가 이제까지 이 땅을 걸어오면서 수없이 질리도록 그 광경을 보아왔었다.
드레스덴을 비롯한 독일의 여러 민간 도시의 폭격으로 인한 대량 살상 혐의에 대해 군사 재판에서 아서 해리스는 오히려 "나는 사람을 죽이라고 이 자리에 앉혀졌다."라고 당당하게 주장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뻔뻔한 살인광 사이코 녀석을 영국 여왕이 동상까지 세워줬다고 한다.
승리와 정의의 이름으로 그 모든 학살이 찬양과 기념의 대상이 되는 미쳐버린 광경… 레오는 이젠 더 이상 그런 '빌어먹을 광경'을 보고 싶지 않았다.

"너희들은 그 동안 정의의 이름으로… 약자를 '사냥'해왔다."

이제 도서관 앞 계단 위 테라스에 홀로 남겨진 레오… 그는 자신의 눈 앞에 계단 밑에 진을 치고 서 있는 SAS 부대에게서 눈을 돌려 밤하늘의 달을 쳐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이제 사냥꾼들의 시대는 끝났다. 사냥꾼들의 밤은 이제 끝난 거지."

그러나 그의 말은 그 이상 뒤를 잇지 못했다.

"발사!!!"

그 소리와 함께 SAS 부대원들의 손에 들린 총에서 총구가 불을 내뿜었다.
그에게로 일제 사격이 가해지는 그 순간 레오가 그들에게 한 손을 내밀었다. 그와 함께 레오의 손 주위로 수십 가닥의 섬광이 스쳤다.

"…!!"

그 짧은 시간… 총알들이 아직 총구에서 떠나지 않은 그 짧은 순간에 레오의 손 주위의 공간에서 수십 개의 칼날들이 공간을 뚫고 튀어나왔다. 그 칼날들은 그와 함께 원 모양으로 펼쳐지고는 곧 빠른 속도로 레오의 몸 주위를 회전했다.
총알들이 레오가 서 있는 곳에 빗발치듯 쏟아졌지만 그 총알들은 레오의 몸 주위를 돌고 있는 칼날들에 의해 남김 없이 튕겨나가고 있었다.

"밤은 맹수들의 시간… 너희들 '사냥꾼'들은 오히려 맹수의 영역에 들어왔고 사냥당할 거야. 맹수들이 사냥꾼들의 오만에 침을 뱉어줄 시간이 온 것이지."

이제 사격이 끝나자 레오가 손바닥을 펼쳐보이는 것과 함께 그 칼날들은 회전을 멈추고 레오의 손 주위로 모여들었다.

"밤은 너희들의 시간이겠지만, 이 권역… '숲'으로 들어온 이상 이제 너희들의 시간은 끝났어."

그 중에 칼을 하나 손에 쥐는 레오는 이제 사형 선고라도 하듯이 말했다.


"너희들에겐 안된 일이지만… 이젠 '맹수'가 너희 '필멸자'들을 사냥할 시간이야."





이글루스 가든 - 이글루 소설가 동맹
by 요아킴 | 2007/12/26 22:13 | [정식소설] 라이드 위드 더 데블 | 트랙백 | 덧글(5) |
2007년 09월 07일
Ride With The Devil - ▶ Chapter 7 - VIII. La Force 不可抗力 (9)



소설을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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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비열하지 않은 사내는 이 비열한 거리를 걸어내려가야만 한다.

- 레이먼드 챈들러 (Raymond Chandler, 1888-1959)





"결국 그들이 '원탁 회의'에서 결정을 내렸군요."

알페르가 말하자 크리스티안이 뭔가 비이냥거리듯 답했다.

"자네의 '기사'들이 드디어 결정을 내린 거군, 「아더 왕」."

그 원탁 회의라는 말에서 뭔가를 떠올린 듯 엷게 미소지으며 알페르에게 말을 건넸다.
그 말에 알페르가 약간 기분나쁜 듯 말했다.

"그 원탁은 리오네스(Lyonness)에서 온 것도 아닐 뿐더러 멀린이 만든 것도 아닙니다. 어리석은 필멸자들이 날조한 것에 지나지 않은 것… 그런 원탁에서 결정한 것이래봤자 뻔하겠죠."

별로 맘에 들지 않는 듯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알페르는 책상 위로 서류를 내던졌다.

"그들은 '그 아이들'을 빛의 세계로 끌어낼 거라고 하는군요. 그들에 선택권을 주는 셈이죠. 협력을 하든지, 아니면 말살을 당하든지."
"어떨 거 같은가?"

흥미 있는 듯한 어조로 크리스티안이 물었다.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둘 다요."

그렇게 단언하듯 알페르가 말했다.

"절대 '원탁 회의'든 '바람을 지배하는 모리아'이든 간에 그들은 그 '아이들'의 상대가 되지 못해요. 단지 그들은 그 아이들이 저의 앞에 도달해 저와 대면하기 위해 예비된 수순에 지나지 않을 존재들입니다."
"상당히 심술궂은 단정이군. 아니면 상당히 느긋하거나. 하핫."

그런 알페르의 서슴없는 말에 크리스티안은, 지금 알페르에게 '폰' 취급 정도밖에 안 받고 있는 원탁 회의의 인물들에게 마음 속으로 '애도'를 표했다.

"시련 없이는 얻는 것도 없죠. 그 아이들에게는 충분히 감당할 만한 시련일 겁니다. 아니… 아마도 그들에겐 이 정도는 시련 '따위'도 안 될 정도로 시시할지도 모르겠군요."

전 세계의 패권을 좌우하고 있는 누상 정부의 요인들을 이만큼 얕보고 비웃을 수 있는 이는 이 세상에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 엄청난 힘과 권력도 그 '무서운 아이들'에겐 아무 소용이 없을 거라고 비이냥대며 단언하는 알페르를 보며 크리스티안은 쓴 웃음을 지었다.

이제까지 알페르가 '예비한' 그 모든 것들… 그것들이 지금 이 순간 이 정도로 무력해질 수가 있을까…
이 정도로 자기 자신이 비관적으로 볼 정도로 허약한 존재였던 것이었을까 …

그런 생각을 하며 크리스티안은 말을 이었다.

"오토(O.T.O.)에서도 회의가 있었군. 나를 노리고 있군 그래. 주 목표인 자네의 부록품으로 말일세."
"결국 그들도 '배신자'를 처단하지 않을 수는 없는 거로군요, 알타반."
"배신자?"

그 단어에 뭔가 불쾌한 듯 크리스티안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배신자라… 아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인 거라네. 그게 내가 제거될 이유란 말일세, 알페르."

그렇게 말하며 크리스티안은 피식 웃었다.

"그들은 3명의 현자… '신의 목소리'를 듣고 '그'를 경배하기 위해 찾아간 '신의 대리자'들이지. 하지만 난 낙오자이자 그 덕에 '진실'을 알고 '신을 거역한 자'가 된 것이라네. …어떤가? 내가 그들 손에 죽어야 할 이유는 이걸로도 충분하네만."
"… '진실'이라구요?"

알페르는 그 말에 묘한 뉘앙스를 느꼈다.

"비록 수억의 거짓이 산을 이룬다 한들 그 안에 숨겨진 진실이 변할 리는 없을 터. 이것이 내가 '알타반'… 마지막 현자일 수 있는 이유인 거네. 그걸 알아두란 말일세, 알페르."

그렇게 말하며 크리스티안은 시선을 돌렸다.

"뭐 그건 그렇다고 치고…."

그는 창가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슬픈 눈의 미녀, 사라의 시선을 마주보았다.
그리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크리스티안은 그녀에게 공손히 머리를 숙이곤 말했다.

"우리의 노르뜨담 드 라 뤼미에르(Nortedame de la Lumiere)이시여, 그대가 사랑하던 '그'가 원했던 세상은 아직 요원할 겁니다. '그 아이들'은 '그'가 떠난 이 연옥을 떠돌고 있구요."

그렇게 말하는 크리스티안의 표정엔 연민의 감정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이젠 옷을 챙기고 문으로 다가가 그는 문을 열려고 했다.
그러다 잠시 멈칫하고는, 뭔가 할말이 있는 듯 사라에게 말을 더했다.

"그들이 이 비열한 연옥에서 끝까지 살아남길 빌어도 좋습니다. 그게 저와 알페르에게 반(反)하는 것이라고 해도 말이죠. 당신이라면 그럴 권한이 있습니다. 그럼 전 이만."

그리고 크리스티안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이제 사라와 같이 둘만 남게 된 알페르. 그는 조용히 창가로 다가가선 사라가 아까 전까지 바라보고 있던 도시의 거리를 창을 통해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거리를 쓸쓸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알페르가 안쓰러워 보이는 듯 사라가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아주려 하자,

"…."

알페르는 조용히 그녀의 손길을 피했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을까… 그가 그녀 쪽으로 시선도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그대같이 착한 '성녀'라면 이 일에 슬퍼할 거야. 나도 그건 알아. 하지만 이게 세상이야… 이게 운명이자, 또한 예정이란 말야. 알겠어, 사라?"

그는 말을 이었다.

"이게 바로 이 비열한 세상, 이 비열한 거리의 속성이야."

그리고 그는 자신이 이루어 놓은 이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인류의 마지막 바빌론' 뉴욕의 거리를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비열하지 않은 '그 아이들'은, 결국 이 비열한 거리를 걸어 내려가야만 해… 나를 멸하기 위해선 말야."





-8-



- 2006년 7월 22일
이탈리아 카스텔 간돌포(Castel Gandolfo), 교황궁(Pontifical Palace)




- 언젠간 이 기록을 남길 날이 올 것이라 생각했다.


편지의 처음 운을 그렇게 뗀 후, 교황 요한 베드로 1세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

한참을 번뇌했을까… 그는 침통한 표정으로 펜촉을 잡고 다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 나의 다음 대에 수양견(守羊犬)의 지위를 맡을 이가 누가 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는 그가 말라키 성인의 예언에 나오는 페트루스 로마나(Petrus Romana : 로마의 베드로)가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손으로 성호를 그으며 그는 기도하듯 하늘을 잠시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그에게 주의 가호가 있기를… 그리고 세계와 로마에 신의 은총이 있기를…"

그리고 다시 펜촉을 든 손이 움직였다.


- 이 광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선대(先代) 클레멘스 5세 성하같이…. 다만 한가지 간절히 빌고 싶은 것이라면 이 일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주시길 바랄 뿐이다. 그러나 내 소원대로 말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되길 바랄 뿐이다.(*1) 아아…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2)…!


그렇게 '유서'를 쓴 교황은 이제 자신의 눈 앞에 있는 포도주 잔을 바라보며 쓸쓸히 미소를 지었다.

"내 형제가 주는 잔을 내가 어찌 마시지 않으랴…."

성경의 구절을 인용하며 그는 망설임 없이 그 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간다.
이제 자신의 '마지막'이 될 이 순간, 그는 '유언'과도 같이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남긴다.


"부디 인류 가운데에 거하실 동안만큼은 인간들에게 자비로울 수 있으시길(Dum inter homines sumus, colamus humanitatem), 맥스 형님…."





-*-




"…!!!??"

뭔가 이상한 예감에 맥스가 고개를 돌렸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앞… 뭔가 머리 속에서 번개가 번쩍한 듯한 느낌을 받은 맥스는 소리를 들었다.
환청으로 들리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 소리를.


이 불안한 느낌…
맥스는 그 환청이 마치 조종(弔鐘)이 울리는 소리라고 느꼈다.


그 때,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네, 맥스입니다."
"자넨가?"

예레미아 추기경의 목소리였다.

"추기경님이시군요. 무슨 일이시길래…?"
"일이 생겼다네."
"무슨 일이죠?"

그리고 추기경이 대답하는 말에 맥스는 자신이 아까 들은 종소리에서 느낀 불안이 단지 불안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콘클라베(Conclave)」가 소집되었다네. 이게 뭘 뜻하는지는 자네도 알겠지?"
"…!?"

물론 알다마다였다.

추기경들이 비밀리에 모여서 교황청과 가톨릭의 큰 일을 논의하는 모임인 콘클라베는 거의 대부분 예외없이 그 일이 있을 때만 열리지 않는가…

… 바로 「교황의 서거(逝去)」일 때 말이다.





-*-





"이 일은 현세계의 가톨릭 신도들에게 혼란을 가져오는 일이 될 것입니다."

바우돌리노 추기경이 그렇게 회의의 처음 운을 떼었다. 그 말에 다른 추기경들도 이의가 없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유도 있으니, 일단 이 일은 차후의 교황 성하를 정하기 전까지는 비밀에 붙여야 한다고 봅니다."

특무국 담당 요아킴 추기경이 그렇게 제안하였다.
그 말에 회의석상에서 말없이 앉아 침묵만 지키고 있던 예레미아는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았지만, 요아킴은 전혀 흔들림이 없는 여유만만한 태도였다.

"그러고 보니 요아킴 추기경이 이번 사건의 책임을 맡지 않았습니까? 대체 그 분의 사인이 무엇이란 말이오?"

라우렌시오 추기경이 마침 요아킴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사실 오늘 이 콘클라베가 소집된 계기가 된 교황의 암살 소식을 처음 알린 것도 요아킴 추기경이 아니었던가.

"글쎄요, 아직 조사중입니다만…."

요아킴은 뜸을 들이듯 말없이 책상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고 있다가 입을 떼었다.

"일단 지금까지의 조사에 의하면 성하께서는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셔서 그런게 아닌가 합니다. 요즘 들어 그분께서 불면증에 시달리고 계셨으니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입니다만…."

그의 말에 예레미아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 형제가 주는 잔을 어찌 받지 않으랴」….'

예레미야는 성경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는 한탄하는 듯 한숨을 쉬었다.

'교황 성하, 당신은 아시고도 그 '독잔'을 받고 순교하신 겁니까….'




-*-



교황의 방에선 한참 의문의 남자들이 조사를 벌이고 있었다.
하나같이 머리에 로브의 두건을 뒤집어 쓰고 있어 얼굴을 볼 수 없는 그들….

그러던 중 그들은 마침내 자신들이 찾던 교황의 편지를 발견하자,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남자가 교황이 포도주를 따라 마셨던 유리잔을 수거하는 것과 함께 한 남자가 결심한 듯 그 편지를 들어선 촛불에 가져다 대었다.

- 사르륵…

불이 붙으면서 서서히 검게 오그라드는 교황의 마지막 유서…

이제 교황의 마지막 유언을 들을 이는 아무도 없다.


…그리고 이제 교황을 죽인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



"일단 조사를 진행하던 중에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습니다. 어제 교황 성하를 마지막으로 면담하고 오신 분이 있었던 걸로 아는데요."

요아킴이 아무렇지도 않게 꺼낸 그 말에 예레미아가 놀란 얼굴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지금 저 녀석은 대체 무슨 의도로 저런 말을 하고 있는 거란 말인가… 요아킴의 의도를 아직도 파악을 못한 듯 의아한 표정의 예레미아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고정한 채 요아킴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때, 교황 성하를 면담하셨던 그 분은 성하께 포도주를 한 병 진상하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조사를 하면서 알게 된 거죠."



-*-



"고맙구려, 예레미아 추기경."
"황공한 말씀입니다, 교황 성하. 오히려 제 심미안을 인정해 주시고 이런 부탁을 해주셔서 영광스러울 따름이죠."

예레미아가 건네준 포도주를 받아들고 흡족한 미소를 짓는 요한 베드로 교황에게 예레미아가 공손히 머리를 조아렸다.
평소 포도주의 품질에 대해 소믈리에(Sommelier : 와인 감별사)급의 격조 높은 감식안을 가진 추기경으로 알려진 그였기에 교황은 가끔 사적인 부탁으로 이렇게 포도주를 구해 달라고 하기도 한 것이었다.

그는 예레미아가 공손히 바친 포도주를 만족스럽게 바라보곤 이제 병을 책상에 올려놓고 말을 꺼냈다.

"그건 그렇고, 사실 추기경께 포도주를 구해오라고 부탁한 건 꼭 포도주 때문만은 아니었소. 추기경이랑 단 두 명이서 의논할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였지. 아마 짐작하고 있으셨겠지."
"물어보실 것이 있으시다면 하문하시옵소서."

예레미아는 교황의 말에 공손히 답했다.

"요아킴 추기경에 대한 처리 때문에 요즘 고민 중이라오."

교황이 요아킴 추기경을 언급했다.
요아킴 추기경이 평소에 무의식적으로 얼굴에 비치는 그 오만한 표정을 예레미아는 그 순간 머리에 떠올렸다.

"그가 주창하는 십자군 이야기가 못내 마음에 걸리는구려."
"십자군이라…"

예레미아가 교황에게 말했다.

"그건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자 가톨릭의 과오(過誤)가 되어 버린 일 아닙니까."
"그건 그렇다오. 그래서 나도 이 일은 유보를 했지만… 그가 단지 나의 반대로 그 십자군 결성을 그대로 포기할 거 같지 않아 보이오."
"그가 확실히 야심이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예레미아는 사실 자기 자신도 확실히 단언할 수 없다는 듯 약간 주저하면서 말했다.

"설마… 그가 독단적으로 그런 일을 추진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세상은 암흑 시대인 중세도 아닐 뿐더러 교황청과 가톨릭도 이젠 교황 성하께서 주창하신 '화해과 평화의 시대'를 위해 개방의 손길을 뻗고 있잖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제 아무리 그라도 그런 짓을…"
"그렇지만 그는 그것에 구애받을 이가 아니라고 생각하오. 그래서 생각을 해 봤는데 말이오."

교황은 뭔가 결심을 한 듯,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말을 꺼냈다.

"예레미아 추기경, 귀하의 '글라디우스 미카엘루스(Gladius Michaellus : 미카엘의 검)'은 요아킴 추기경의 '유다의 사제들'에게 '대적'할 수 있겠소?"
"네?"

갑자기 교황이 꺼낸 이 말에 예레미아도 적잖이 당황했다.

"무, 무슨 말씀이신지…."
"나도 생각을 해봤는데 이 방법밖에 없을 거 같소."

교황은 침통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 '프레스비테리 유다에(Presbyteri Judae : 유다의 사제들)'은 너무 앞으로 많이 나갔소. 실존하지 않는 기관이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기관, 교황을 비롯해 그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는 법황청의 비밀 집단… 그 자체는 지금의 교황청과는 이제 이질적인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오."

교황이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예레미아는 표정을 굳힌 채 듣고만 있었다.

"적어도 중세와 근대까지만 해도 필요한 조직이었지만 이제 지금의 교황청에는 더 이상 '유다의 사제들'은 필요한 조직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소."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이 '미카엘의 검'도 존재의 이유가 없는 것 아닌가… 예레미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교황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그래서 결심했소."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예레미아에게 교황은 마음을 굳게 먹은 듯 말했다.
…지금 자기가 하려는 이 말이 얼마나 위험한 말이 될지를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요아킴 추기경을 추기경 직에서 해임시키고 '유다의 사제들'을 해체시킬 것이오.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마찰은 예레미아 추기경, 경의 '미카엘의 검'이 처리해주길 바라오."




-*-




"그 포도주에서 뭐가 나왔을지는 아마 예레미아 추기경께서 더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요아킴이 비웃는 듯한 눈빛으로 예레미아를 바라보며 말하자 예레미아는 순간 지금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를 알았다.

이건…「역습」이었다!

예레미아는 분노와 경악에 자신도 모르게 의자를 밀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와 함께,

- 철컥!

예레미아의 뒷통수 쪽으로 공이가 장전되는 소리가 들렸다.

"속세와는 달리 이 법황청 안에서는 미란다 원칙이라는 게 적용되지 않습니다, 추기경 예하."

예레미아의 뒷통수에 콜드 피스메이커 '디에스 이라에'를 겨누고 있는 채, 패트릭 신부가 아주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사의 결과는 명확합니다, 콘클라베 의원 여러분."

요아킴은 이제 모든 의문점을 해결한 듯 추기경들에게 두 손을 벌려 보이며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이번에 밝혀진 교황 성하의 '독살' 사건와 법황청 전복 음모 미수를 수사한 결과에 따라, 예레미아 추기경을 감금하고 '미카엘의 검'에 대한 조사를 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그는 한 남자를 머리에 떠올리며 씩 웃었다.
마치 그 남자는 어떻게 행동할까 '기대'하는 듯한 그런 미소로.

"물론 '죽음의 전도자' 맥시밀리언 나타나엘 그레이워스 신부도 법황청에 소환할 겁니다."




-*-




"… 뭐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형제자매들이여."

노트르담 광장에 여전히 서 있는 채로 품에서 담배를 꺼내며 그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맥스는 조용히 연기를 들이마시곤 한숨이라도 쉬듯 내뱉었다.

마치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한심하기라도 하다는 듯이…

"맥시밀리언 신부님?"

그리고 그의 앞으로 한 사람이 다가왔다.

"…?"

그가 교황청의 신분임을 스스로 대놓고 드러내놓지는 않았지만, 맥스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자의 왼쪽 가슴께에 달고 있는 교황청의 상징인 「성 베드로의 열쇠 (Petersschlussel ; Le chiavi di San Pietro)」 의 문장에 반응을 하는 듯했다. 그건 법황청 소속의 성직자라면 누구나 다 알아볼 수 있는 상징…

게다가 맥스는 그 열쇠 문장을 달고 온 이 자가 단순히 면담만 하러 자신에게 온 게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제게 데이트를 신청하러 온 건 아닌 것 같군요, 아가씨."
"신부님께서 당장 출두하시라고 법황청에서 호출했습니다, '미카엘의 검' 소속 '죽음의 전도사' 맥스 신부님."

맥스의 직책까지 언급하며 사무적인 태도로 말하는 글래머의 수녀 아가씨가 말했다.
맥스가 평소에 애정을 가지고 있던 츤데레 수녀님 에바 양보다는 상당히 단정한 옷차림이었지만 워낙 몸매 자체가 글래머라 그녀는 상당히 색기가 넘치는 프로포션을 자랑했다.
거기다가 도도해보일 정도로 사무적인 표정으로 그녀는 맥스를 바라보면서, 이 와중에서도 자신에게 호색한같은 미소를 지어보이는 맥스가 약간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차후 자세한 사항은 법황청에서 마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일단 가까운 데서 커피나 같이 한잔 하는 건 어떨까요, 자매님?"
"글쎄요. 곤란하군요, 신부님."

그의 작업하는 멘트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넘기며 그녀는 여전히 차가운 어조로 답했다.

"저랑 같이 온 이분들에게까지 커피를 다 사주신다면 혹시 모르죠."

그렇게 그녀가 말하는 것과 함께,

- 스윽…

언제부터 와 있었는지 노트르담 광장 주위로 수십의 인영이 맥스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품 속에 손을 넣어 언제라도 '그것'을 빼들어 자신에게 겨눌지 모르는 수십의 성직자들의 모습을 둘러보고는, 맥스는 그 수녀에게 고개를 돌려 약간 실망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여전히 이 상항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는군… 그녀는 그렇게 한심하다는 듯이 맥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
"분명히 말해 두건데, 맥스 님은 지금 입장이 그렇게 한가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풍만한 가슴께에 올려져 있는 자신의 십자가를 손으로 만지작거리고는 말했다.

"바티칸 법황청 제 13과 특무공성기관 '프레비스테리 유다에(유다의 사제들)'… 신과 성 베드로, 그리고 교황 성하에게 대항하는 '이단자'들, 특히 당신같은 사람을 「사냥」하는 게 우리들의 일… 지금 당신은 그런 우리들에게 포위되어 있어요."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맥스는 아주 여유만만한 태도였다. 자신을 둘러싼 수십의 인영 따윈 안중에도 없이, 맥스는 자신의 눈 앞에 서 있는 '유다의 사제들' 소속의 '집행자'인 이 아가사(Agatha) 수녀의 도발적인 프로포션과 풍만한 가슴을 즐거운 눈길로 감상할 뿐이었다.
그리곤 머리를 긁적이면서 멋적다는 듯한 말투로 그는 그녀의 말에 되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나를 사냥할 거라고 말씀하신 겁니까, 섹시한 아가씨?"

그런 상스러운 반응이 아가사 수녀는 약간 화난 듯 눈매가 치켜올라갔다.

"대체 당신이란 사람은…!?"
"지금 입장을 파악 못하는 건…"

아가사 수녀가 화를 내며 소리치는 걸 맥스는 나직한 목소리로 중간에 말허리를 잘랐다.

"지금 입장을 파악하지 못하는 건 제가, 아니…."

그리고 그는 잠시 한숨을 쉬며 말을 끊고는,

"그러니까…."

… 이젠 상당히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내」가 아니란 말이다, 『필멸자』들이여."

말하는 중간에 갑자기 맥스는 어조 자체를 달리해서 말했다.
게다가 '필멸자'라고 말하는 그 말투는…

"아쉽군, 아가씨. 그쪽과는 이런 곳보다는 침대 위에서 만나는 게 더 좋았을 텐데."

픽 하고 비웃듯이 웃는 맥스의 대답에 아가사는 그게 상스러운 언동이라고 화도 낼 수 없을 정도로 표정이 굳어 있었다.

"……?!"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이 광장을 감싸고 있는 무거운 공기가 느껴졌다.

그렇다… 이건…


"오늘은 사냥하기 꽤 좋은 『밤』이군, 아가씨."

밤하늘에 떠 있는 파리의 달을 바라보며 여전히 입에 담배를 문 건들건들한 태도로 맥스는 중얼거렸다.

"그래… 좋은 밤이야."

그러던 그는 이제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바닥으로 던져 버렸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아가씨 당신 말대로… 사냥하기 아주 좋은 밤이지."

그는 그렇게 으스스하게 말하며 아가사 수녀를 향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

그런 그의 반응에 아가사 수녀는 움찔하듯 뒤로 물러섰다. 자신도 모르게 몸이 반응한 것이었다.
사람을 마주보는 게 아니라 마치 깊은 숲에서 맹수를 만난 것 같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며 뒷걸음치고 있었다.

먹음직스럽다라는 그 말은 분명 맥스의 평소 스타일대로라면 상당히 성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음란한 표현일 터였다.
하지만 아가사는 그것보다는 다른 걸 그 말에서 감지하고 있었다.

그 말은 마치 그녀에겐 토끼의 입장에서 맹수가 입맛을 다시는 소리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던 것이다.

그녀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이 맥스에게서 느껴지는 건…
'인간'을 「사냥」할 수 있는 맹수에게서 느낄 수 있는 그런 살기(殺氣)였던 것이었다.

이제까지 수많은 인간을 처리해 온 역전의 처형자인 그녀조차도 처음 느끼는 이 살기를 피워올리는 맥스는 그 살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파리의 시리도록 맑은 밤하늘…
그 창공에서 교교히 빛나는 달이 비치는 그 한가운데…

아가사 수녀를 향해 찡긋 윙크까지 하면서 맥스가 말했다.


"내가 사냥을 「당하는」 게 아니라, 내가 사냥을 「하기」 좋은 밤이야."









주석
by 요아킴 | 2007/09/07 11:47 | [정식소설] 라이드 위드 더 데블 | 트랙백 | 덧글(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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